스티븐 달드리의 ‘빌리 엘리어트’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유럽은 무너져 내린 물질적·정신적 기반을 복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덜 입은 영국은 승전국으로써의 지위와 함께 어느 곳보다 빠르게 일상의 복귀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제국주의의 유산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의 탄생을 알렸던 영국은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크게 위축됨 없이 나쁘지 않은 호시절을 맞고 있었다. 이러한 영국을 떠받들고 있었던 중심은 바로 중산층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영국 경제는 고비용, 저효율의 늪에 빠진다. 비효율적이고 경쟁력 없는 산업들을 국유화를 단행하면서 재정적인 부담을 안게 된다. 집권당에 따라 다양한 처방들이 시행되지만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중산층은 엷어지면서 영국경제는 흔들리고 있었다.

1979년 영국의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마거릿 대처가 총리로 임명된다. 대처는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며 경제구조의 전환을 꿰하는 정책에 착수한다. 저비용 고효율을 내세우며 각 분야의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각종 규제의 완화를 통해 시장지향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한다. 그리고 1981년 석탄산업의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23개 탄광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하며 대량해고를 예고한다.

산업혁명에서부터 영국 산업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탄광산업이었다. 영국에서 탄광산업이 가진 사회적 중요성이 그만큼 컸으며 대대로 광부로 살아왔던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광부’라는 직업은 하나의 상징과도 같았다. 영국에서 탄광 노조는 사회적 영향력도 강해서 대처 이전에 총리(에드워드 히스)의 연임을 저지하기도 했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로 재선에 성공한 대처는 그 여세를 몰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1984년 탄광 산업의 구조조정에 돌입한다. 이에 노조는 총파업으로 맞선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바로 이 시기의 영국 동북부에 위치한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탄광촌은 경찰 병력이 겹겹이 방어막을 치고 강력한 공권력으로 고립무원의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곳에서 열한 살 소년 빌리의 발레리노 꿈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소년의 성장을 감동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소년의 꿈이 자라났던 시대적 상황과 토양을 촘촘히 배치하고 있다. 파업이 진행될수록 연대의 고리는 느슨해지고 노동자의 삶은 궁핍해진다. 영화는 소년의 꿈을 향한 과정과 함께 아버지와 형을 통해 탄광 파업의 패배과정을 엮는다.

1984년 시작된 탄광 노조의 파업은 1985년 패배한다. 1년 여의 과정 속에서 빌리는 그의 의지에 따라 가족들을 설득하고, “우리는 이미 끝났지만 빌리는 아니야. 빌리를 이렇게 끝나게 할 순 없어”라는 말과 함께 아들의 꿈을 위해 파업 대열을 이탈해 출근하는 버스에 오른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그의 신념을 접는 모습으로 당대의 아픔을 그린다.

마침내 빌리는 로얄발레학교에 합격하고, 파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형은 무거운 마음으로 막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빌리는 검은 색의 탄광촌에서 흰색의 백조로 날았지만, 1980년대 중반의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빌리의 극적이고 감동적인 상황들만으로 감정을 이끌어 갔다면 오히려 그 여운이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시장 논리에 의해 궁지로 내몰렸던 노동자들. 누군가의 성공담이 아니라 삶의 기반이 무너져가는 과정 속에서 진행되는 시대상황이 함께 했기에 영화의 감동은 더 깊고 크게 울린다.

1980년 격렬하고 뜨거웠던 시대를 알게 된다면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진정한 주인공은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백조가 되어 날아오르는 빌리의 모습이 아니라 아들의 모습을 보며 벅찬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김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