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br>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언제 봄이 올까 했는데 어느새 성큼 다가선 듯하다. 한결 포근해진 날씨에 봄바람이 살랑거리더니 매화, 산수유 꽃이 속닥이 피어나고 양지 바른 곳에선 가녀린 풀잎들이 손을 흔들며 봄을 부르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황량한 대지의 여기저기서 싹이 돋고 움이 트며 물이 오르고 꽃이 피어나는 모습이 나긋나긋 보이고 자박자박 들리는 것 같다. 차디찬 땅 속에서도 내밀한 생명력을 키우고 창조적 일손을 멈추지 않으며 저마다 수많은 믿음의 교감으로 약속처럼 새봄으로 솟아나는 것이다.

많이 보라고 봄이라 했던가? 관찰하고 눈여겨보면 정말 보이는 것들이 많고, 신기할 정도로 일어나는 만물의 변화를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봄의 느낌을 잘 전달받을 수 있기에 봄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씨앗’ ‘태양’ 등을 뜻하는 ‘볻’에서 유래돼 만물이 소생하고 씨앗을 뿌리는 때로 햇빛이 따스해지는 시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봄을 한자로 풀이하면 춘(春) 즉, 해(日)의 기운을 받아 풀(<8279>)이 돋아나는 모양이고, 영어로는 스프링(Spring)으로 싹이 트고 꽃이 피는 모습에서 가볍게 튀어 오르는 형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

‘긴 겨울 잠을 깨고 봄이 일면/나른한 언덕 위에 花香 흐르다/스치는 바람 결에 버들잎 흩어져도/빨래터 아가씨는 고갤 숙이고(春破冬眠起 花開處處幽 吹風楊柳散 漂女暗低頭)’ -강성위 한시집 ‘하늘에 두 바퀴의 달이 있다면(1991)’ 중 ‘春’

봄을 품은 겨울은 혹독하기 마련이다. 마치 누구에게나 삶의 고난과 시련이 냉혹한 것처럼…. 그러나 역경을 이기고 난관을 극복한 인내의 결실이 값지듯이, 혹한 끝에 피어난 꽃이 더욱 향기로운 것이리라. 도처에 돋아나고 피어나는 화초와 수목은 무덤덤하게 손짓하는 것 같지만, 기실 얼마나 매운 인동의 시간 속에 생동과 개화의 꿈을 끈덕지게 키워왔을까? 그렇기에 풀 한 포기, 꽃망울 하나에도 숙연하고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냇둑의 수양버들이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개울 가로 미나리 싹이 파릇하게 돋아는 곳에 동네 빨래터가 있었다. 아직은 시릴 정도의 찬 물에 손을 담가 빨래를 하며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간간이 빨랫방망이를 두드려 장단을 맞추는 모습은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수시로 명지바람이 불어와 긴 치맛자락 같은 실버들이 하늘거리면 괜스레 빨래하던 아녀자의 얼굴이 붉어짐은 무슨 연유였을까? 40~50년 전의 아슴한 고향 정경이 엷은 감미로움으로 피어나는 듯하다.

자연의 속삭임 같은 봄날이 사뿐사뿐 다가오고 있다. 무채색 대지의 화폭에 입김 같은 양광(陽光)의 붓질로 살며시 채색하며 연초록 싹을 보듬고 꽃과 잎을 그려내고 있다. 거기에 향기까지 스미게 해 벌과 나비를 부르고 인향까지 어우러지게 하니 춘삼월 호시절이 멀지 않을 듯 싶다. 분분한 코로나 난국에도 봄이 오는 걸까? 한 줄기 희망 같은 백신의 효능이 봄햇살처럼 펴지고, 방역의 체질화, 거리두기의 일상화로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봄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