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금이라는 말을 써넣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옛날 일이 떠오른다. 서울 상경하는데 어머니가 거기 무슨 신문사를 찾아가 보라고 하셨다. 외할머니 고향이 면천이시라 했고, 그 신문사 집안으로 시집 간 분이 계시다고 했다. 몇 년 지나 막내 동생이 또 서울로 오게 되자 어머니는 또 한 번 그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식 셋 대학 공부 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우실지 깨닫지도 못했고, 내 의식과 안 맞는 곳에 가 손을 빌릴 수 없는 알량한 자의식이 문제였다.

사립대학과 국립대학은 등록금 차이가 예나 지금이나 크다. 그래도 사정은 제각각이다. 나 또한 다른 친구들 전액면제며 기성회비 면제 같은 혜택을 받을 때 속이 쓰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테다. 그러면서도 학점에 악착을 부리지 못했다. 마냥 강의실 바깥으로만 떠도는 부실하고도 미련한 학생일 뿐이었다. 고등학교 교사 자식은 생활형편으로도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다. 오로지 학업 성적으로나 가능성이 있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공부할 생각이 안 났는지, 터무니없이 낮은 학점을 받고도 정신은 온전히 다른 데 팔려 있었다. 이제 학생들 장학금의 추천서를 쓰는 처지가 되고 보니 여러 생각이 아니 날 수 없다.

가장 많이 바뀐 점은 생활형 장학금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소득분위라는 것이 있어, 일정 소득 기준 이하 학생들에게는 어느 정도 먼저 배분해 주는 돈이 있다. 또, 옛날에 비해 확실히 여러 종류의 장학금들이 생겨났다. 나라에서 주는 돈, 학교에서 주는 돈 말고도 많은 장학재단들이 있다. 서울에도, 학생들 고향에도 있어 어떻게든 혜택을 받는 학생들이 있다.

또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세월 바뀐 요즘도 ‘못 사는’ 집 학생들이 여전히 적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가정 형편도 안 좋은데 몸까지 안 좋은 학생도 있고 보면 건강은 확실히 빈부문제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가난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건만 세월 흘러도 이 ‘계급’이라는 것은 여전히 문제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은 받느냐 안 받느냐에 훨씬 더 민감하기도 하다. ‘줌’(zoom)으로 수업을 할 때도 세수 안 해서가 아니라 자기 사는 형편을 보여주기 싫어 화면을 켜놓지 않는 학생들도 많다는 시절이다.

그럼 어떻게 남들 ‘다’ 받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나? 가만 살펴 보면 비결이 있으니, 무엇보다 잘 준비하는 성실함이 중요하다. 같은 값이면 뭔가 제때 성의를 보인 학생에게 차례가 가게 된다. 그러고 보니 옛날의 나는 어지간히 모자란 학생이었던 것 같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