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해를 넘기며 가슴 아픈 뉴스가 들려왔다. 입양한 어린아이를 때려죽인 양부모. 세상이 무너진대도 그럴 수는 없다. 그럴 만한 까닭은 도무지 안 보인다. 대학까지 나온 부부는 둘 다 목사님 자녀라고 했다. 교육과 종교는 어디까지 무너져야 하는가. 사람답게 사는 길을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와 교회는 어찌 입을 다물었는가. 개인의 잘못이라 비난하며 성찰없이 혀만 차고 말 터인가. 안타깝고 불쌍한 건 정인이의 어린 생명뿐일 것인가. 언론이 다루는 수다한 이슈들처럼 짧은 동안만 후루룩거리고 말지는 않을까. 피어나 보지도 못하고 한 아이의 온 세상이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동학대.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접수된 사례들이 2001년에 2천105건이었다가 2018년에는 2만4천604건에 이른다고 한다. 열 배도 넘게 증가한 셈이다.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과 유기 등으로 구분되지만 정인이의 경우는 매우 복합적인 학대를 겪은 일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대하고 어른이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는 없을까. 아동학대 경우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데이터는 우리 안의 인식이 나아지기 보다 부정적인 방향을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 그러는 것일까.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 일일까. 폭력의 모습에 경악함을 넘어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하여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스페인 교육자 프란시스코 페레르(Francisco Ferrer)는 ‘권위에 의한 어떠한 억압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모든 폭력에 반대하였다. 그 어떤 선한 명분을 가진다 해도 아이에 대한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것이다. 모든 권위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교육을 주창하였으며, ‘폭력의 배제’가 교육의 방법이자 목표여야 한다고 했다. 우등생과 열등생이 존재하지 않으며, 수학을 잘 하거나 미술을 잘 할 뿐이라고 했다. 경쟁으로 휘몰아가는 교육에서 협력으로 함께 일어나는 교육을 선언하였다. 교육의 장에 서 보기도 전에 폭력으로 스러져간 생명 앞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언론이 ‘아동학대’ 이슈를 붙들고 있는 데서 한 자락 희망을 본다.

해결책언론(Solutions Journalism). 뉴스는 선정적, 충격적, 부정적이어야 한다고 인식하여, 보여주고 드러내는 데만 집중하는 언론행위는 독자를 피곤하게 한다. 2008년 미국 AP(Associated Press)의 발표에 따르면, 젊은 독자들이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휘발성이 높은 언론보도를 회피한다고 하였다. 오늘 독자들은 여러 이슈들에 대하여 시민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 사회가 제시할 접근방법은 무엇인지,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솔루션을 향한 지향점을 제안하는 언론행위를 기다린다.

어린 생명의 희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아동폭력만큼 비열한 행위도 드물다. 교육과 종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법과 제도는 어떻게 정비해야 하는지, 사회와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