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젓가락 같은 과자를 들고 다니는 사람부터 거의 장대 같은 과자를 직접 만들었다고 자랑하기도 했던 ‘빼빼로의 날’이라는 11월 11일이 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과 직접 기다란 과자를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부모나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어떤 것이 좋을지 가게 앞에서 심각하게 고르는 학생, 젊은 직장인들이 아니라면 이날이 무슨 날인지를 기억하고 매출로 연결하려고 신경을 쓰는 곳은 아마도 편의점이나 마트를 경영하는 사람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원래부터 달과 날이 겹치는 중일(重日)을 귀하게 여기고 양수인 1월, 3월, 5월, 7월, 9월에는 각각 1일, 3일, 5일, 7일, 9일이 양수(陽數)로 겹치는 날이어서 명절처럼 지내기도 한다. 그동안 11월의 중일은 큰 의미가 없었으나 1이 싱글을 뜻하는 숫자이기도 하고 무려 4개나 겹치기에 중국의 한 대학생이 이성 친구가 있는 이들이 기념하는 ‘밸런타인데이’에 대항하는 뜻으로 ‘독신의 날’ 또는 ‘독신자의 날’로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착안하여 비즈니스로 연결한 곳이 알리바바(阿里巴巴)그룹이었다. 알리바바그룹은 이날을 ‘온라인쇼핑의 날’로 삼고 판매행사를 기획하였다. 그러자 중국의 다른 대형 쇼핑플랫폼들까지 이벤트에 동참하여 이제는 중국의 대표적인 소비행사인 ‘솽스이(雙11· Double 11)’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는 2009년에 시작한 ‘솽스이’가 11번째다. 그동안 중국 소비자들은 이날 0시부터 12일 0시까지 이루어지는 이벤트에 대비하여 미리 사고 싶은 물건들을 상거래사이트의 ‘쇼핑카트’에 담아두었다가 이벤트가 개시와 동시에 가장 먼저 클릭하여 구매하는 경쟁 심리까지 생겨났다. 실시간으로 이 이벤트를 중계하는 곳도 생겨나 주목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11월 11일 오전 0시부터 개막한 ‘솽스이’에서 알리바바그룹의 쇼핑사이트인 티엔마오(天猫·Tmall)가 원화 환산(1위안 169원 기준) 약 1조6천900억 원에 이르는 100억 위안의 거래액을 기록하는 데는 96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작년보다 29초가 빨라졌다. 이 이벤트에서 티엔마오가 12일 오전 0시에 폐막하기까지 24시간 동안의 거래액은 무려 2천684억 위안(약 45조3천596억 원)이었다. 중국 상무부가 14일 발표한 11월 1일부터 11일까지 중국 온라인소매판매액은 사상 최대인 8천700억 위안(약 147조300억 원)이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7%가 증가한 수치다. 11일 동안 하루 평균 13조3천553억 원어치의 매출을 기록한 셈이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판매전에 각국이 손을 놓고 있을 리 만무하다. 이날 알리바바가 달성한 거래액은 일본 최대 상거래사이트인 라쿠텐(<697D>天)의 1년 매출액보다 많다. 일본 교토 통신에 따르면 알리바바 플랫폼에서 솽스이 행사 개시 1시간 만에 1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한 곳으로는 중국업체 외에 애플, 나이키 등 미국기업, 파나소닉이나 시세이도와 같은 일본기업도 있다고 한다. 특히 올해 중국의 솽스이 이벤트에서 매출 규모가 10억 위안(약 1천690억 원)을 넘긴 기업은 15개사였는데 거기에 일본 유니클로가 들어갔다고 한다. 이 솽스이 이벤트에 일본기업들은 일찍부터 참여해왔다. 솽스이에서 팔린 외국 브랜드 매출액 순위에서 일본이 4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는데 가오(花王)의 일용품, 시세이도의 화장품, 야만의 미용기기는 특히 중국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식품저장 용기 회사가 이곳에서 큰 매출을 일으킨 적도 있다.

전자상거래로 유명한 아마존도 중국의 왕성한 구매력을 그냥 두지는 않았다. 올해 솽스이에 참여한 곳은 아마존 미국 외에 영국, 일본, 독일이 특별 코너를 만들어 인기 있는 국제브랜드 60여 개 이상 품목을 특별할인하는 행사를 하기도 하였다.

중국의 온라인상거래 이벤트이기는 하나 말 그대로 온라인세상에 넘지 못할 국경은 없다. 이 엄청난 규모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솽스이에 전 세계 기업들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올해에는 총 25만 개에 이르는 브랜드를 가지고 500만 개의 업체가 티엔마오에 진출하였다. 올해 처음 진출한 해외브랜드만 2천600개가 넘는다. 38만 개에 이르는 중국 지방기업들도 이번 행사를 통해 판로를 새로 개척하였으며, 이번 이벤트에서 팔린 물품을 유럽 각국으로 배달하기 위해 참여한 중국 택배회사만해도 400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 입이 절로 벌어질 뿐이다. 그동안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이 세계의 시장으로 바뀐다는 이야기는 오래되었지만 명실공히 세계의 시장 중국의 구매력을 이번 행사에서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포항에는 신선한 농수산물이 많고 제법 명성이 있는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해외는 별개로 치더라도 국내 소비자들에게 온라인상거래를 통해 꾸준히 팔 수 있는 최종제품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특정 시기에 생산되는 농산물, 수산물 등이고 이것을 2차, 3차로 가공하여 연중 판매하고 맛볼 수 있는 식품으로 고부가가치화한 상품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 솽스이의 판매실적을 그냥 보고만 있자니 속만 아프다. 우리도 무슨 수라도 내어야만 한다. 싫든 좋든 이제 11월 11일은 세계적인 이벤트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베트남에서도 중국의 ‘독신자의 날’을 적극 비즈니스로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 야후쇼핑에서는 11월 11일에 ‘좋은 쇼핑의 날 캠페인’을 하고 있고 라쿠텐에서는 아예 ‘독신의 날’로 한정시킨 대규모 판매촉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어떠한 것도 지나치는 법이 없다. 조금이라도 특이하거나 내세울 만한 것은 모두 비즈니스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11월 11일을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서 11월 11일은 공식 기념일로는 ‘보행자의 날’, ‘농업인의 날’이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거나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빼빼로 데이’라는 말도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적어도 ‘독신자의 날’을 탄생시킨 아이디어를 생각해보면 포항에서도 이날을 새로운 ‘날’로 삼을 수 있지는 않을까 싶다. 꽁치든 청어든 반을 갈라 내장을 훑어내고 깔끔하게 나란히 늘어트려 덕장에서 기름이 빠질 때까지 얼렸다 녹이면 쫀득하게 먹을 수 있는 최고의 건강식품인 ‘과메기’로 탄생한다. 11월 11일이라는 숫자에서 과메기가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고 우길 수 있지 않겠는가. 포항에서는 다소 무리가 따를지는 모르겠지만 11월 11일을 ‘과메기의 날’로 정하였으면 한다. 앞으로 매년 11월 11일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빼빼로’를 직접 만들거나 사서 선물하면서 즐거운 ‘빼빼로 데이’를 즐기더라도, 소비자들은 ‘과메기’를 대대적으로 판매하는 포항만의 ‘과메기의 날’로 활성화하였으면 좋겠다. 이와 같은 숫자를 이용한 판매촉진은 과메기 외에도 있을 수 있다. 포항이 자랑하는 돌문어도 날짜를 잡을 수 있다. 문어의 다리는 8개다. 8월 8일이라면 ‘팔팔한 문어’를 먹는 ‘문어의 날’로 삼기 좋다. 오징어의 다리는 10개다. 중국의 쌍십절(10월 10일)은 다소 정치색이 있지만 우리는 ‘울릉도 오징어의 날’로 삼아도 좋다.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