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선원 옆에 자리한 요사채와 느티나무. 도솔암은 경남 통영시 봉수로 108-145에 위치해 있다.

가을날의 하루는 유난히 짧다. 용화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숲은 부산하게 하루를 접고 있었다. 용화사 오르는 반대편으로 넓은 시멘트 길이 시원하게 산으로 이어져 있지만 우리는 걸어서 도솔암을 오르기로 했다. 만만치 않은 비탈길에서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가 고요한 숲을 깨운다.

지척에 있을 거라 여겼던 도솔암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친구는 지친 기색도 없이 잘도 오른다. 관음암으로 향하는 자동차가 우리 곁을 가볍게 지나칠 때마다 그 편안함이 부럽지만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급한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뒤늦게 놓친 것들을 알고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사위어가는 가을 숲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즐거움도 크다.

‘소치는 사람이 채찍으로 소를 목장으로 몰고 가듯 늙음과 죽음은 중생의 목숨을 몰고 간다.’중간중간 비석처럼 서 있는 글귀들이 피곤함을 잊게 한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여가 없이 세월에 쫓겨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만나는 글귀들을 주제로 삼아 소소한 마음밭을 일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이끌려 살아온 숱한 시간들을 이 곳에 내려놓고 갔을까. 가파른 길은 겸허해지고 아파오는 다리와 거친 숨소리가 뿌듯하다.

관음암을 지나고 미륵산 정상으로 향하는 오솔길과 헤어진 후에야 도솔암이 보인다. 고려 태조 26년(943년) 도솔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는 남방제일선원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도솔암은 한국 불교 선종의 고승인 효봉스님이 6.25전쟁 직후 제자인 구산 스님과 함께 이곳에서 선종의 법맥을 계승하였다.

도솔선사가 미륵산 암굴에서 수도할 때 호랑이와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어느 날 호랑이가 처녀를 업어와 바치자, 선사는 호랑이를 꾸짖고 처녀를 고향으로 데려간다. 처녀의 아버지가 은혜를 갚기 위해 300냥을 선사해 그 돈으로 도솔암이 지어졌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어느 절에나 있을 법한 설화는 신빙성이 없지만 도솔암 위쪽에는 여전히 바위굴이 남아 있다고 한다.

절은 조용하다. ‘컹’하고 외마디로 짖던 누렁이의 눈빛도 이내 무심해진다. 가을 앓이를 하는지 조용한 산사를 찾아든 객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꼬리를 흔들며 반기거나 경계심으로 불안해 하지도 않는다. 온전히 자유롭다. 그의 이름은 보리이거나 반야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님은 출타 중이신 듯하다. 하루치의 낙엽이 가만가만 뜰아래로 모여들고 있다.

늦가을 늦은 오후의 정취로 마음이 심산해지는데 도솔암은 통영 앞 바다를 그윽하게 내려다 볼 뿐 흔들림이 없다. 선지식 효봉 스님을 생각하며 절을 둘러본다. 일제 강점기 와세다 대학 법대를 졸업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가 되었지만 조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승려가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를 남긴 분이다. 전쟁이 나자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여수로 가던 중 뱃멀미가 심해 잠시 통영과 인연을 맺게 된다.

마침 용화산 도솔암이 비어 있어서 며칠 쉬었다 갈 요량으로 주저앉다 아주 눌러 살게 되었다고 한다. 효봉 스님은 수행을 시작하면 엉덩이가 짓물러 깔고 있던 방석이 엉덩이에 달라붙을 정도로 꼼짝하지 않아서 절구통 수좌라고 불렸다. 그리고 동료 스님을 고자질하던 제자에게 “너나 잘해라.”고 소리를 치셔서 ‘너나 잘해라’ 스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편백나무가 울창한 미륵산 미래사에서 효봉 스님의 부도를 본 듯한데 이곳 도솔암에서는 효봉 스님에 대한 어떤 자취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대웅전이나 동국 선원보다 요사채의 쓸쓸함과 담장 밖에 선 오랜 느티나무가 떠난 스님이 남기고 간 법문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벽속에서 울어대는 겨울 귀뚜라미처럼 절 안에 갇혀 세상을 읽던 그 서슬 푸른 기운은 사라지고, 도솔암의 텅 빈 눈빛 속에는 그렁그렁 그리움이 잠겨 있다.

대웅전 가는 길에 ‘말씀은 가만가만’ ‘걸음은 조용조용’ 이란 음각으로 새긴 글자가 맹숭맹숭하게 쳐다본다. 누구를 향한 글귀일까. 성성하게 푸른 기운이 살아 있을 경내, 발소리 낮춰가며 들어섰을 한 때의 도솔암을 그려본다. 수행하는 스님이 신경 쓰여 걸음을 눌러 밟고 숨죽이며 법당 문고리를 당겨 보고 싶다. 가는 절마다 번듯한 선원들이 비어 있듯 쓸쓸하다.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잠시 대웅전에 들러 기도한다. 남의 시선에 휘둘림 없이 마음의 주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친구는 언제나 내 삶의 질을 돌아보게 만든다. 인연이 다하는 그날까지 참 좋은 인연이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어떤 인과 관계에 얽혀 이곳까지 함께 떠나올 수 있었는지 그 오랜 인연에 대해서도 감사한다. 우리가 갖는 순간순간의 생각이나 염원은 우주에 남아 진동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인연도 사랑의 파장으로 진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들꽃이 흔들리듯 향기롭고 잔잔했으면 좋겠다.

짧은 기도를 끝내고 법당을 나설 때 고목의 느티나무는 여전히 맑은 기운 성성하고, 친구는 마당을 서성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륵산에 얼굴을 묻은 작은 바다 홀로 먼 데를 꿈꾸듯 항해 중이다.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의 도솔암은 하나의 큰 말씀으로 남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