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사의 소박함이 드러나는 일주문. 심원사는 문경시 농암면 청화로 380-101에 위치해 있다.

청화산과 속리산 사이 828m의 도장산 깊숙한 곳에 심원사가 있다. 쌍용구곡의 비경을 감상하며 절을 찾아 가는 길은 초입부터 걸음이 설렌다. 계곡 옆 작은 주차장에 두어 대의 차가 주차돼 있지만 산길을 한적하다. 발밑에서 돌멩이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가빠지는 나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온다.

심원사는 직지사 말사로 태종 무열왕 7년(660년) 원효 대사가 창건하여 창건 당시에는 도장암(道藏庵)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뒤 이 절의 연일이 유정을 도와 일본에 가서 포로들을 데려오는 등의 공훈을 세워 선조 38년 나라로부터 부근 십 리 땅을 하사받았다. 영조 5년 낙빈대사가 옛 절터에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현재의 심원사로 고쳐 부른다. 1958년 건물이 전소되어 1964년 법당과 요사채를 세워 오늘에 이르지만 예전의 위용은 찾아볼 수 없으며 특별한 문화재도 전하지 않는다.

돌길에 익숙해져 갈 때쯤 서서히 숲의 속삭임이 들린다. 계곡 물소리도 들린다. 좁은 산길은 가을 공기로 가득하다. 발품을 팔지 않으면 당도할 수 없는, 오염되지 않은 절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즐겁다. 쉽게 얻은 것일수록 쉽게 잊혀지게 마련이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산사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다.

미세한 숲의 소곤거림에 내 귀는 훨씬 예민해진다. 작은 폭포와 맑은 물,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바람, 숲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작은 움직임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경이롭다. 그토록 반짝이던 나뭇잎은 어느 새 윤기를 잃고 까칠하다. 머지않아 이 계절도 눈 깜짝할 사이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성급히 돌아서는 계절의 뒷목덜미를 바라보며 나는 진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으리.

저만큼 보이는 산문 앞에서 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낮고 겸손해서 오히려 높아 보이는 문, 이토록 아름다운 일주문은 본 적이 없다. 가벼운 양철지붕과 작고 소박한 현판, 무명옷 두르고 사립문을 서성이던 잊혀진 애환과 정서가 녹아 흐르는, 저문 기억들이 말없이 서 있다. 세파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온 산문이 뿌듯하도록 자랑스럽다.

작은 산문을 경계로 속세로 이어져 있던 길은 더 이상 나를 따르지 못한다. 적송 한 그루와 오동나무가 사천왕을 대신하고 주목이 울타리처럼 자라는 길을 따라 경내로 향한다. 이 길 위에서는 누구나 나무향이 날 것 같다. 살이 오른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노닐고 있는 조그만 철재다리, 그 극락교 너머에 심원사가 있다.

숲이 울리도록 진돗개가 짖어대며 나온다. 녀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대웅전으로 향한다. 크고 잘 생긴 녀석의 눈에 나는 큰 불청객은 아니었나보다. 이내 경계심을 푼다. 꼬리를 흔들며 법당 문 앞을 지키는 영리한 녀석에게 나는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단청을 하지 않은 대웅전, 석가모니 삼존불을 모신 수미단과 후불탱화, 어디에도 화려함을 탐내지 않았다. 법당 안은 단출하고 소박하다. 천장에 달린 소원등도 많지 않다. 소박함이 나를 낮고 경건하게 만든다. 하지만 허리통증이 심해 앓는 소리를 내며 겨우 삼배를 마칠 수밖에 없다.

풍족해 보이지 않지만 결핍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맑은 기운이 일렁이는 심원사의 가을은 온전한 소박미로 눈부시다. 가지런한 장독대에서는 여성스러운 정갈함이 배어 있다. 비구니 스님이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오실 것 같다. 요사채 뒤편 허름한 건물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주인이 있음을 알린다.

잘 자란 산수국과 돌배나무가 대웅전을 지키고, 흔하디흔한 풀꽃들이 이곳에서는 더 사랑스럽다. 요사채와 삼성각, 존재감을 드러내는 풀과 나무들의 눈빛을 읽을 수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고즈넉한 평화가 머문다. 고향집에 온 듯 꾸밈없는 따스함이 곳곳에서 피어난다.

대웅전 옆 빈터에는 빛바랜 연등 하나 모과나무 가지에 걸려 홀로 쓸쓸하다. 그 아래 시멘트 벽돌 위에 나무판을 얹어 만든 투박한 벤치가 허전하도록 시리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모과나무 이파리가 툭툭 어깨를 치며 무뎌진 감성을 깨워줄 것만 같다. 서리 오기 전에 모과를 거두는 밀짚모자 쓴 스님이나 시집을 읽으며 고독한 영혼을 달랠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풍경조차 비어 있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모과나무는 빈 몸으로 서기 위해 묵상 중이다. 떨어진 나뭇잎을 밟는데 풍경소리가 대신 울어준다. 이곳에는 외로운 것이 없다. 이 계절이 서늘하도록 아름다운 건 비움의 미학 때문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 나도 몇 번이나 미니멀라이프를 꿈꾸었다. 하지만 비워진 공간은 또 다시 물건들에 점령당하곤 했다. 영혼을 방치한 채 소유에 지쳐가는 삶, 비우지 않고는 어떤 것도 품을 수 없다.

심원사의 묵언 같은 말씀 한 자락 품고 나오는데 운치 있는 별채가 보인다. ‘금장암’이란 현판을 내건 개집을 보고 뒤늦게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금장이를 향한 스님의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는, 숨어 살 듯 고요함을 사랑하는 심원사는 독백 같은 절이다.

산문을 나서는 내게 가을의 속삭임이 들린다. 그대, 이 가을엔 시집 한 권 들고 여행을 떠나라. 아름다운 계절일수록 걸음이 빠른 법이니 조용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서둘러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