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명절맞이 풍속이 차츰 달라지고 있다. 민족의 대이동을 방불케 하던 추석연휴 귀성행렬이 줄어들고 관광지나 휴양지를 찾는 가족들이 늘어난 것이다. 전염병의 재확산을 우려한 정부 당국에서의 귀성 이동 자제 권유 등으로 예년에 비해 20% 정도 국민들의 전체 이동이 줄었다고 하지만, 갑갑해진 일상에서의 일탈 같은 마음으로 귀성 대신 기분전환 겸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수개월째 이어지는 위축되고 침체되는 일상이 조금씩 바뀌더니 급기야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를 보내는 모습조차 이색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른바 ‘추(秋)캉스’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추석연휴뿐만 아니라 가을날의 여유로운 시간에 언택트 여행이나 휴가(바캉스)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실제 지난 추석연휴 때의 숙박업소 예약률은 코로나의 와중에도 강원도가 95%, 제주도가 60%에 육박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성묘나 고향방문을 미루고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명소를 찾아 명절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난데없는 바이러스가 고유한 풍습마저 변모시키는 양상이다.

미상불 필자도 가족과 함께 한가위 연휴를 제주도에서 보냈다. 봄날에 떠날 예정이었던 제주도 여행이 돌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을로 연기되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3년 전부터 진행 중인 아들과의 자전거국토종주 장기계획에 따라 이틀은 해안으로 조성된 제주환상자전거길을 바다와 달빛을 벗삼아 달렸고, 나머지 이틀은 가족들과 섬 속의 섬 우도 일주 등의 일정으로 라이딩과 관광을 겸해 나름 뜻있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용두암에서 출발해 애월~대정~서귀포 쪽 반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원점 회귀하는 라이딩 내내 아름다운 절경의 해안도로와 이국적인 분위기에 젖는 설레임으로 환상(環狀)자전거길은 그야말로 환상적(幻想的)으로 펼쳐지는 듯 했다. 또한 바퀴가 굴러가는 곳곳마다 올레길 트레킹과 캠핑, 카약과 낚시 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말 그대로 추캉스(추석 바캉스)가 실감날 정도였다. 특히 함덕해변에는 밤에도 투명한 에메랄드빛을 띄는 수면에 잔잔하게 어리는 보름달빛을 감상하거나 서늘한 밤바람을 쐬는 여행객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자연이나 세상은 시간과 환경이 바뀜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기 마련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생활방식이나 삶의 양태는 주변 여건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익숙하게 대처해 나간다. 집콕족이니 비대면 온라인 성묘, 추캉스 등과 같은 생소한 명절 풍속도도 어쩌면 새로운 환경과 특이한 변화에 순응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러한 변화나 낯선 환경에 직면해서 우리 고유의 관습이나 전통문화가 퇴색되거나 희석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만 하다. 변화하되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적응하되 배제해서는 안 될 것들을 잘 판단하고 챙기는 추캉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것은 곧 우리의 뿌리를 지키는 일이며 명절 퓨전문화를 현실에 맞게 가꾸고 보듬어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