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영 <br>수필가
정미영
수필가

논두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고 푸르다. 새떼들이 구름 사이로 미끌어지듯 날아가고, 건너편 대숲은 바람 따라 초록 물결을 일으킨다. 논 가장자리에는 백로가 부리에 미꾸라지를 문 채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농촌이 빚어내는 정겨운 풍경을 정독하며 리듬감 있게 걷는 내 마음이 흐뭇하게 젖어든다.

큰형님이 조카 결혼식을 앞두고 기별을 했다. 잔칫집에 미리 와서 음식 장만을 돕고, 하룻밤 자며 동서지간에 정도 나누자고 했다. 흔쾌히 가겠다고 했지만, 뒤돌아서니 걱정이 되었다. 동작이 굼뜨고 일머리를 모르는 내가 큰일 치르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되면 어쩌나 신경이 쓰였다.

명절 때 큰집에 가면 차례 상에 음식 가짓수가 많다. 내가 시집와서 처음 추석을 맞이했을 때 제수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차례 지내고 동네 분들과 경로당에서 음식을 나눠먹는 인심이 온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결혼식을 앞두고 다양한 음식을 장만하리라.

햇살이 투명하게 일렁이는 고샅에 들어선다. 고양이가 사뿐 걸음으로 걸어 다니고 닭이 홰치는 소리도 들린다. 담장마다 능소화가 웃음 짓고 호박이 줄기에 의지해 졸고 있다. 여유로운 정경이다.

그런데 큰집 가까이 다가가니 마음이 바빠진다. 고소한 냄새가 내 얼굴에 훅 끼쳐든 까닭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왔건만, 혼자서 음식 만들기를 시작하셨는가 싶어 조바심이 인다. 안마당에 들어서니 몇몇 아주머니가 전을 부친다.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그 곳에도 재빠른 손놀림으로 한쪽에서는 나물을 다듬고 다른 쪽에서는 생선을 손질한다. 그들 사이에서 형님을 찾아 인사드린다.

“동서야,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데이.”

형님 친구 분들이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음식 만들기를 시작했단다. 내 집에서부터 음식 장만할 걱정을 잔뜩 이고 왔는데, 살며시 웃음이 난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으로 비켜나 심부름거리를 찾았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 몫의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형님네 마을에서는 품앗이가 남아 있어 보기 좋다.

시골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주택이나 길이 여기저기 헐리고 새로 고쳐졌다. 젊은이들 또한 학교나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등속이 늘었다. 농사나 관혼상제에서도 노동을 노동으로 갚는 대신 돈을 지불하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이 마을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스스럼없이 품앗이를 한다. 서로 형님 동생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와준다.

누구네 집에 경조사가 있거나 환자가 생기면 이웃사촌들이 더 잘 알아서 챙긴다. 옛정을 그대로 체득할 수 있는 품앗이 전통이 명맥을 이어가니 반갑다.

한 편으로는 부럽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이웃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 서로 소원하다.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어 왕래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공지사항은 관리실에서 방송을 하거나, 게시판에 붙여놓는다. 이런 연유로 사람살이의 살가운 정을 품앗이에서 느낄 수 있어 고맙다.

편의와 실리를 쫓아가는 세상이다. 나에게 손해가 되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이익이 되면 두 발자국 앞서려는 경향이 늘었다. 그러나 품앗이는 동네 대소사를 제 일처럼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익을 바라거나 욕심을 부리면 불협화음만 이어질 뿐이다. 자칫 생산성은 줄어들고 이웃 간에 믿음마저 깨질 수 있는 것이 공동체에서 마음 맞추는 일이다. 오늘 형님네서 음식 준비에 손을 보탠 분들도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배추전이나 부추전을 서너 장씩 챙겨가는 것이 전부다.

어우렁더우렁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들의 땀 흘린 얼굴이 힘들기는 해도 편안해 보인다. 도린곁에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웃과 어깨를 겯고 곰살궂게 마음을 나누며 사는 것도 삶의 재미이리라. 정신적으로 충만해 보이는 품앗이꾼들 앞에서 내 가슴이 푸근해진다. 마음에 환한 등불 하나 내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