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전 쪽에서 바라본 반룡사 풍경. 반룡사는 고령군 쌍림면 반룡사길 87에 위치해 있다.

일주문은 길을 살짝 비켜나 높은 곳에 서 있다. 절을 드나드는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먼 곳을 응시하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고독한 품격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쉽게 일주문을 통과했지만 이내 단단한 철문이 더 이상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장내 집회를 금한다는 하얀 안내문이 콜록거리며 반룡사를 보호한다. 경내는 공사 중인지 푸른 가림막이 쳐져 약간은 어수선하고, 인기척 없는 산중에 빗줄기만 뿌려댄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철문 아래로 몸을 굽혀 허락없이 경내로 들어선다.

반룡사는 동화사의 말사로 신라 애장왕 3년(802년) 해인사와 함께 창건된 절로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가 중건하였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가 다시 중건하였다. 대가야의 후손들이 신령스러운 용의 기운이 서려 있는 곳에 세웠다고 해서 반룡사라 이름 붙였다.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진된 것을 사명대사가 중건하였지만, 화재로 전소되어 1764년 영조 때 대웅전과 만세루를, 1930년경 다시 중수하였으며 1996년 대적광전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허락 없이 들어서는 사찰이라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미숭산 품은 더 없이 아늑하고, 그 안에 자리 잡은 반룡사는 바깥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따뜻한 기운이 흐른다. 퇴락해 가는 천년고찰의 상실감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가지런히 쌓아올린 담들과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절의 품격을 한껏 높여 주고 있다.

커다란 굴참나무가 불이문을 대신하고 맞은편에는 잘 정돈된 승탑밭이 숙연하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 배치된 당우들도 산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대적광전 앞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예불을 볼 수 있도록 검은 차양막이 쳐져 시대의 아픔을 호소하는데, 법당 뒤편 레이스빛 불두화들만 축제를 벌이듯 쓸쓸히도 탐스럽다.

굵어지는 빗줄기를 피해 대적광전 법당문을 열고 들어선다. 손 세정제와 방명록이 사천왕처럼 나를 점검하는 이색적인 풍경, 이 모든 것들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이름을 적고 백팔배를 시작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법당은 언제나 위험과 불안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던 가장 안온한 공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기도할 때면 저절로 감사함으로 행복해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텅 빈 법당에서 올리는 백팔배가 부끄럽다. 잔인했던 태풍의 상흔과 도무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회는 의기소침한데, 나는 그들의 아픔을 방관하지는 않았는지, 위기 앞에서 나를 동여매느라 타인과 사회로부터 돌아앉아 있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본다.

궂은 날씨에도 몸은 가볍다. 가뿐히 백팔배를 끝내고 가부좌를 하고 비로자나불을 올려다본다. 만물의 창조주인 비로자나불의 미소에는 견고한 침묵만 흐를 뿐 말이 없다. 부드러움과 힘이 공존하는 목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경북 유형문화재로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혜희(慧熙)의 작품이다. 여느 불상과는 다른 묵직함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혼을 태워 불상을 탄생시켰을 조각승의 일생이 떠오른다. 오로지 한 곳을 향한 집념과 절절함으로 이루어졌을 모든 날들, 그의 삶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깊고 푸른 호수 하나 자리 잡고 있었으리라.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처럼 생명의 기운이 도는 부처님, 마침내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는 순간의 감격과 희열을 무엇에 비하랴.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비로자나불의 엄숙하고도 잔잔한 미소에서 조각승의 얼굴이 보인다. 일상의 위기 앞에서 수많은 염원과 기도로 무릎을 꿇던 순간들도 있었으리. 생각지 않았던 역병과 수많은 자연재해들, 인류가 쌓아올린 질서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좀 더 겸허해지고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오래도록 비로자나부처님을 우러러 본다.

부처님과 나 사이에 수많은 말씀들이 오고간다. 생명력이 느껴진다는 것은 세월과 정성이 빚어낸 아우라를 뜻한다. 예측조차 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와 현실 앞에서 부처님은 꺼지지 않는 빛이 되어 존재하신다. 나의 백팔배는 좀 더 이웃의 아픔을 돌아볼 줄 아는 자비심으로 이어져야 함을 깨닫는다. 내 안에 맑은 기운이 솟아오른다. 법당을 나설 때는 바람은 멎고 빗줄기는 유순해졌다.

물기를 머금은 절은 한층 깊고 힘이 넘친다. 대단한 풍광을 자랑하지도 않고,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도 없다. 하지만 눈길 닿는 곳마다 안정적인 맥박이 함께 한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소나무와 배롱나무 들은 조화롭게 서로를 보듬고, 적당한 높이의 돌축대에서는 반듯함이 읽혀진다. 욕심 없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중용의 아름다움을 갖춘 선비와 대화를 나누듯 나는 경내를 거닌다.

우측 산기슭에 자리 잡은 약사전과 지장전을 둘러보는데 여성 불자 두 분이 우산을 쓰고 절을 빠져나간다. 어디에 있었던 걸까?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가는 발걸음에 부처님이 보인다. 이끼 낀 돌축대는 여전히 좌선 중이고, 넓은 파초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염불을 외며 그들을 배웅한다.

나는 철 늦은 꽃들이 시간을 품은 채 나투시는 모습을 그윽히 바라보며 절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