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강력한 태풍이 올 때마다 도심의 주요 부착물인 간판이 수난을 당한다. 큰 돈을 들여 도시미관을 해치는 돌출형간판, 세로형간판, 입간판 등이 가져다 주는 홍보 효과는 사실 크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에 도시미관을 정비하고 복구사업비용도 줄이기 위해 이와 같은 간판문화를 바꾸고 실질적인 점포나 가게의 경쟁력의 원천인 내용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제9호 태풍 마이삭 때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상가 모습. /경북매일 DB

최근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강력한 두 개의 태풍이 경북 동해안 지역을 강타하며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울릉도는 방파제가 유실되고 차량과 선박이 파손되었으며 도로도 유실되었다. 포항을 비롯한 경주, 영덕, 울진 등지도 집중호우로 한 해 농작물이 추석을 앞두고 쓰러지고 심지어 어디에 있던 것인지도 모르는 컨테이너 하우스가 버젓이 남의 논밭에 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코로나19로 어렵던 시기를 보내고 있던 소상공인의 가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돈을 들여 세워두었던 입간판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건물 외벽에 전기장치까지 달아 두었던 세로형 간판은 구겨지고 떨어졌다. 어느 모델의 옥상 간판도 넘어졌지만 옥상 안쪽으로 넘어져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다. 아는 지인이 경영하는 철강공장도 지붕이 구겨지고 훼손되었지만, 그 옆 공장의 지붕은 아예 이번 태풍이 뜯어갔다고 한다.

포항시 등 지역 공무원들은 불어난 강물로 오염된 산책로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부러진 가로수를 처리하는 등 불철주야 고생하였다. 그동안 공무원들의 일 처리에 불만이 있던 시민들도 이번에는 박수를 보냈다. 코로나19사태가 확대된 이후부터 최근 태풍 피해 복구 등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올해만큼은 공무원들이 모두 월급 값 이상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본다. 이번 재해는 특히 아주 가끔 나타나는 초대형 태풍이었기에 아무리 사전에 철저하게 단속하고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힘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을 이겨왔기에 피해가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이처럼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이후부터는 복구가 최대 현안이 된다. 하지만 태풍이라는 자연재해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지금처럼 강풍으로 훼손되는 주요 대상이 늘 같다는 것이 문제다. 간판이다. 그동안 상인들은 자기 가게 홍보를 위해 어느 한 곳이 돌출형이나 세로형 간판을 만들면, 그 옆 가게는 그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한 간판으로 대응해왔다. 입간판이나 돌출간판, 세로형 간판 등은 오래전부터 도시미관을 해치고, 자동차 운전자들의 시각을 어지럽게 하며, 보행자에게는 불편을 주는 대상이었다.

약 16년 전인 2004년 당시 건설교통부는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경기도 화성과 판교지역의 건축주나 건물사용자가 건물에 간판을 함부로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최근 두 도시를 가보지 않아 지금의 모습은 모르지만, 그때 정부가 내세운 기준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신도시 건축물 간판 경관제도’라는 이 정책은 무질서하고 원색적인 건물 간판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운전자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교통사고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기존 도시보다는 신도시 건설 단계부터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여겨 시행했던 것 같다. 당시 계획으로는 업소당 가로형 간판 1개만 허용하고 세로형 간판은 설치를 금지하며 돌출형 간판은 4층 이상 건물에서 통일된 형태로 설치할 때만 허용하였다. 또 가로형 간판의 경우 3층 이하에는 위층과 아래층 사이 폭 이내에서만, 그리고 4층 이상에는 건축물 상단과 측면에만 설치할 수 있도록 하며, 간판의 색채는 주변 건물이나 간판과 어울리지 않는 순도 높은 원색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문자도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각형체 사용을 억제하는 상당히 강력한 방침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강한 의지로 규제하더라도 언제나 그 틈새는 있기 마련이다. 상인들도 자신의 가게가 생존하고 더욱 번창하려면 더욱 기발하고 크며 화려한 간판이 필요하다고 믿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간판(看板)’이라는 존재와 용어 자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거래는 시장이 중심이었고, 그곳에서 거래를 위해 모인 상인들은 호객하거나 자신의 거래목적을 위해 장터를 돌아다니다 적당한 상인을 발견하고 거래하거나 거간꾼을 통해 매매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이후 상인이 자신의 가게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가가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들이 상회 등 회사조직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물론 유사한 기능은 있었다. 주요 건물에는 간판이라는 용어가 아닌 현판이나 편액 등이 걸렸다. 때로는 나무판자에 붓글씨를 써서 대문 근처에 걸어두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인들이 도입한 간판과 유사한 기능을 가지면서 지금의 네온사인과 같이 밤에도 빛나는 초롱을 걸던 곳도 있었다. 깊은 밤중 산길을 밝혀주는 지금의 여인숙 기능을 함께 하였던 주막의 등불이었다.

이처럼 간판이라는 존재는 근대 이후든 이전이든 그 가게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용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려주는 용도 등에 일차적 목적이 있다. 그리고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이 멀리서라도 자신의 가게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용도로 오랫동안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때마다 다시 그림이나 글자를 새로 쓰던 아날로그 간판은 순식간에 글씨를 바꿀 수 있는 디지털 간판으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누구나 지닌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위치 기능을 이용하여 가게 이름부터 주변 맛집 검색 등을 통해 정확하게 해당 지점까지 지도로 안내해주고 있다. 굳이 입간판, 돌출간판, 세로형간판 등 온갖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간판이 없어 가게나 어떤 업체를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대형 건물에 입주한 기업이나 점포도 굳이 머리를 치켜들어 빌딩 바깥의 간판을 보고 몇 층에 있는지 찾을 필요도 없다. 건물 로비에 들어가면 네모난 아주 작은 크기의 판에 각층별로 입주한 업체나 가게를 깨알같이 써서 안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종의 간판이다.

우리는 간판의 크기와 모양을 생각하기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간판이 화려하고, 네온사인을 두르고 원색적인 글자로 손님을 유혹한다고 하더라도 가게의 성업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유통점이라면 그 점포에 진열된 상품들의 품질이나 상태가 양호하고 다양성이 갖추어져 있고, 접객하는 종업원의 친절도가 고객의 재방문을 결정한다. 음식점이라면 아무리 수시로 실내 장식을 바꾸고 온갖 진귀한 진열품으로 가게 분위기를 화려하게 꾸미더라도, 정작 그 가게의 정체성인 음식점으로서 음식이 맛없거나 청결하지 않고 손님들이 불편하면 소용이 없다.

이번에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초대형 태풍이 연속으로 강타하면서 지역 곳곳에 있는 많은 사업체의 간판을 부수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당장 망가진 간판부터 새로 만들기 전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였으면 한다. 또다시 지금처럼 태풍이 와서 강풍으로 날아갈 세로형 간판이나, 입간판, 돌출형 간판을 굳이 돈을 들여 마련해야만 할지를.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강력한 태풍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그동안 도시미관을 헤친다는 지적이 있었던 간판이라면 더더욱 이번 기회에 깔끔한 작은 디자인으로 만들어, 스스로 우리는 간판보다는 내용이 충실한, 간판이 없어도 경쟁력이 높은 가게임을 자랑해보면 어떨까. 명함에 금박을 입혔다고 그 사람이 높게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시기다. 시간이 흐르면 녹슬고 태풍 때마다 날아갈까 노심초사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업의 성패는 간판보다는 내용에 있음을 잊지 말자.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