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영 <br>수필가
정미영
수필가

이른 새벽, 흥해 용연지에 도착했다. 새벽바람의 기척으로 해가 물속에 풀어지자, 졸고 있던 물고기들이 햇귀와 타전을 시작했다. 물빛 그리움 하나 가슴에 구겨 넣고 찾아왔더니, 내 마음에 곰비임비 막혀 있던 응어리들이 무게를 덜어냈다.

수풀 사이에서 한 아저씨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물속을 응시한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어 조심스레 가까이 가보았다. 그물망에 작은 물고기 서너 마리가 파닥거렸다. 은빛 물고기를 바라보는데 문득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검게 탄 얼굴로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붕어를 낚던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 오롯이 겹쳐졌다.

어느 해 여름, 어머니가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어린 남매를 건사하고 병수발은 물론 집안일까지 모두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즈음 아버지의 낚시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를 따라 간간히 절에 다녔던 아버지는 이전까지 낚시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수술한 어머니에게 참붕어가 약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는 곧장 가느다란 낚싯대를 빌려왔다.

나는 펄떡이는 노르스름한 붕어를 아버지가 직접 낚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버지가 달랑 낚싯대 하나만 챙겨들고 집을 나서는 날이었다. 나도 따라가겠다며 떼를 썼다. 위험해서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버지의 손을 얼른 잡았다.

낚시터에 다다랐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두세 번 지나자 제법 넓은 저수지가 나타났다. 저수지는 한가로웠다. 산그늘에 물빛이 더욱 짙어 보이는 곳이 있었고, 햇살이 비쳐 물비늘이 반짝이는 곳도 있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 몇 장이 물살에 일렁거렸다.

아버지는 나에게 낚시를 할 때는 조용히 있어야 된다고 했다. 하지만 신신당부의 말도 내게는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왜 떠들면 안 되느냐고, 물 위에 떠다니는 저 새 이름은 무엇이냐고…. 묻다가 지치면 동요를 불렀다.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노래는 끝없이 이어졌다. 알고 있는 노래를 다 부르고, 다른 노래가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불렀다.

그때쯤이면 저수지는 다시 고요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날따라 아버지와 나뿐이었다. 나는 소금쟁이가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이따금 나에게 미소만 지어 보일 뿐 묵묵히 찌를 바라보며 낚시질만 했다.

한참 지났다. 아버지는 작은 물고기는 물에 도로 놓아주고, 손바닥 크기의 붕어들만 집에 가져왔다. 붕어를 손질해서 찜통에 넣고 푹 고았다. 가스 불 옆에서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행여 넘칠세라 정성을 다했다. 비린내가 나면 어머니가 먹지 못할까 봐 참기름을 듬뿍 넣고 들깨가루도 넣었다.

“참붕어 국물은 약이라고 하더라. 식기 전에 후딱 마셔라.”

“부처님을 믿는데….”

“내가 붕어 잡기 전에 부처님께 약속했다. 당신 약으로만 쓴다고.”

핼쑥한 얼굴의 어머니는 뜨거운 국물을 쉬엄쉬엄 마셨다. 아버지의 낚시질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집안에는 붕어 고는 진한 냄새가 배다시피 했다. 그 덕분인지 어머니는 차츰 건강을 회복하였다.

저 낚시꾼도 예전의 아버지처럼 누군가를 위해 고기를 잡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재미 삼아 낚시질을 하는가. 가까운 나무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간 저수지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때 아버지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흘러가는 구름에 근심을 실어 보내고, 불어오는 바람에 고단함을 딸려 보냈을까? 나는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며 아버지와 나만의 또 다른 추억 조각들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퇴적된 기억들이 한순간 튀어 올라 수평선 밖 허공을 맴돌았다. 순간 내 가슴 가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고였다.

용연지의 바람이 내 마음을 눈치 챈 듯 잔잔하게 윤슬을 일으키며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