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한번씩 꼭 들르는 곳이 하나 생겼다. 이름하여 아인슈페너를 파는 커피 전문점. 그렇게도 아이스커피를 즐겼건만 몸이 다 식으니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만 마시게 되었는데. 이 뜨거운 커피 위에 흰 크림 듬뿍 얹은 아인슈페너 파는 곳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흰빛의 크림 맛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것이랄까. 점원께 물어보니 이곳만의 수제, 직접 만든 것이란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 차가운 크림 온도는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한 냉장에서 온 것일 터. 뜨거운 커피 위에 차가운 크림의 날카로운 대조미가 입안의 감촉을 생생하게 만든다.

더욱이 이 크림은 뱃속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편할 수 없다. 토핑 크림 얹은 것이 속을 더부룩하게 하고 입안에서도 눅진한 느낌 남아 있는 경우 얼마나 많던가. 이 집 크림은 그런 속된 맛과는 거리 멀다고 벌써 며칠째 아침마다 마시며 감탄에 감탄.

하, 그러고 보면 커피라는 것을 참 어지간히도 마셔왔다.

처음 커피 맛을 본 것은 중학생 때 어머니가 손님 오셨을 때만 타 내오시는 ‘코히’ 맛을 본 것. 그때 수입산 커피가 수준 있었더랬다. 대학 와서 5동 앞 자판기 앞에 서서 나한테 담배 가르쳐 준 권영석과 같이 싸구려 믹스 커피 마시며 담배까지 태워 뱃속이 노랗게 변하던 기억도. 아이스커피도, 뜨거운 커피도 연한 맛에 꽤 오래 길들였던 것도 같은데, 한참 나중에 드디어 스타벅스 별다방 커피가 상륙했더랬다. 그 맛이 어찌나 쓴지 혀가 떨어져 달아날 지경.

24시 편의점에 원두커피 천 원짜리가 등장하자 비로소 4천 원, 5천 원짜리 커피가 무섭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에 목에 신분증 패용하고 체인점 커피 하나 사들고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규직의 자부심이라나, 어쩐다나. 그래도 비싼 느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나 또한 커피는 하루 세 잔 네 잔도 사양 않는 중증 중독 환자건만. 기가 막힌 커피 맛은 언제 맛봤는지 기억에도 없었거늘. 이제 향미 가득한 아인슈페너 한 잔 앞에 놓고 이것이야말로 커피 중에서도 커피가 아니더냐 한다.

아인슈페너(Einspnner)란 사전 보면 비엔나 커피의 한 종류, 오스트리아 것이란다. 원래는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를 가리킨다던가 하고. 또 “오스트리아 빈의 마부들이 추위를 이기고자 크림과 설탕을 얹은 커피를 마신 것에서 유래”했다 한다.

아하, 오스트리아, 빈. ‘꿈의 노벨레’였던가, 아르투어 슈니츨러.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또….

단념, 체념을 익히면 더 불행하지 않아도 되느니. 나는 어제 한 가지 미련, 애착을 단단히 끊어냈느니.

아인슈페너 이 아름다운 커피 한 잔만으로도 한껏 행복을 만끽할 수 있나니.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