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 행사 모습. /포항문화재단 제공

최근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코로나19의 백신 개발에 나섰으나 일단은 러시아가 한발 먼저 내디딘 모습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이 백신이 공인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주요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듯이 과연 러시아 의료산업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백신 개발임을 증명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국익을 우선한 또 다른 웃음거리의 하나로 끝날 것인지도 함께. 이와 별개로 세계 각국의 정책당국자들은 여전히 자국의 경제회복과 고용 창출에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어떤 국가나 지역이든지 모든 분야에 걸쳐 총체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 지원대상에서 가장 뒷전에 놓이는 분야가 있다.

어쩌면 아예 머리에서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음악, 전통공예, 미술, 역사나 국학연구, 문학 등 해당 국가나 지역의 정신문화와 연관성이 깊은 문화예술, 인문분야다. 일반적으로는 의식주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서야 국악이나 판소리와 같은 민족 예술 공연에 눈을 돌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향토사 등 인문분야를 살펴보게 되며, 전통공예나 현대 작가들의 미술작품 전시회를 둘러보며 소장 욕구를 키우기 마련이다.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정신문화가 밀리는 것은 그만큼 삶의 여유를 찾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국가 경제 전반의 위기상황에서는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문화예술 분야가 큰 타격을 입게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국가나 가계가 부유하더라도 문화예술, 인문분야에 대한 수요는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체질적으로 문화예술의 소비는 사람들이 모여, 접촉하고, 대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인데 비대면, 비접촉과 더불어 이동 자체가 제한되는 이번 사태는 문화예술인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일본의 전통문화예술계는 최근 그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본 전국에서 전통공예품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367개 사업체 가운데 지난 4월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0% 이상 줄어든 업소가 56%에 이르며, 이들 중 약 40%는 폐업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그동안 이들 대부분이 백화점, 특급호텔 등의 유통망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 더욱 피해를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매출 수입이 감소하고 있는데도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지속되면 경영악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경우 전통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 대부분이 고령이고 후계자가 부족하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들은 독자적인 판매망을 가지고 있지 않아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경제회복이 지연되면 결국 폐업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당장 포항지역만 하더라도 그동안 자생적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젊은 문화예술인들이었지만 후계자를 키울 정도의 여력은 없어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만 있다. 국악, 수묵화, 전통공예, 판소리 등을 이어가고 있는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시민들도 허다하다. 지역 문화예술인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은 앞서 언급한 일본의 사례보다 더욱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소수이긴 하겠지만 지역의 전통문화예술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과 애향심만으로 스스로 호구지책을 마련하면서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후계자 후보들은 거의 중도에 포기할 생각을 심각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포항시가 문화예술교육 거점으로 선정된 것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들에게 작용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포항시가 진정한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지원, 특정 기업의 메세나 활동, 일부 관계자의 기부 행위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문화예술은 돈으로 사면 생산공장이 돌아가면서 활성화되는 물질문명이 아니라, 정신문화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평소 경기가 좋고 성장 단계에서 가계의 소득이 지속 증가하던 시기에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문제점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경제 성장 단계에서는 축적된 재산을 이용하여 고미술품부터 전통 회화, 전통공예품은 물론 현대 작가의 작품을 불문하고 일종의 투자 등의 목적으로 관련 소비가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도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국악이나 판소리 공연의 관람부터 전통도예가의 작품이나 현대 화가 미술작품의 전시회관람, 작품구매 등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소비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위기에 닥치면 상황은 급변한다. 문화예술의 소비자 가운데 허영이나 과시 목적의 소비계층이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간다. 기업이나 단체의 메세나 활동을 위한 예산도 경제위기에서는 축소 내지는 중단될 수밖에 없다. 평소 지역의 정신문화나 인문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왔던 뜻있는 애호가인들 도리가 없다. 당장 생계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한다. 이러한 현상이 한꺼번에 몰리면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생각지도 않던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지역 문화예술과 전통공예 활성화를 위해 행정, 기업, 단체, 시민에 이르는 전 계층이 협력해 지역 문화예술인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포항문화재단 제공
코로나19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지역 문화예술과 전통공예 활성화를 위해 행정, 기업, 단체, 시민에 이르는 전 계층이 협력해 지역 문화예술인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포항문화재단 제공

이번 위기를 계기로 지역 문화예술계도 고령화의 진전, 후계자 부족,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문화예술의 유통부문을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당장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일 것이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자체나 단체에서 지역 문화예술인을 보호하여 지역 고유의 문화예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비대면, 비접촉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연예술, 전통공예품, 회화나 조각 등의 소비자와 공급자를 중개할 수 있는 ‘시장’ 예를 들어 온라인중개사이트를 구축하였으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공연이면 공연기관의 포스터나 안내, 전시회면 전시회를 개최하는 미술관의 홍보만이 유일한 시민과의 소통 채널이다. 문화예술인 자신들도 그동안 스스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전통공예작품이나 예술작품을 오직 오프라인의 전시회를 통해 직접 구매자와 대화하고 교류해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생산하는 공연예술이나 전통공예, 문화예술 서비스는 미술관, 공연장 등과 같은 ‘공간적 장소’를 통해서만 가능한 수준 높고 차원이 다른 예술이라는 자존감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실제 고미술품이나 골동품과 같은 문화재급의 예술작품들도 카탈로그나 화상을 통해 수십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이 경매로 거래되기도 한다.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작품을 온라인 전시하고 택배 배달하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문화예술작품이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판매되어야만 수준 높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며, 택배로 주문 판매되는 작품이라고 해서 문화예술작품의 품격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문화예술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편하게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포항이 진정한 문화도시라는 타이틀을 달려면 행정기관의 지원만 바라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시민 한 사람당 단돈 천 원이라도 들여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의 작품 하나를 소장하기로 하자. 비대면 시대인만큼 자기 동네부터 살펴보자. 커피숍에서 모인 시민들이 자신이 최근 구매한 작품이나 만나본 지역 문화예술인의 작품세계를 거침없이 이야기하게 되는 순간 포항은 진정한 문화도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