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늦장마로 며칠째 계속 비가 내렸다. 예기치 못한 물 폭탄을 맞은 부산과 강원 등지에서는 갑작스런 폭우에 하천 범람, 침수, 산사태 등으로 피해가 속출했고, 인명피해까지 가져와 안타까움을 더했다. 자연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나약함이 다시금 드러났지만, 철저한 대비와 적절한 대처로 피해를 막거나 최소화하는데 지혜와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간간이 소강상태를 보이기는 하지만, 여름날 장마나 소나기가 잦다 보니 농사일이나 바깥 활동에 제약이 많아진다.

비 오는 날씨에 옷이나 물건을 적셔가며 마음마저 축축해지는 청승맞은 일들을 대부분 꺼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로 실내 활동을 하게 되는데, 옛 선비들은 기후나 시간, 계절에 따른 호기(好期)를 잡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글공부와 자기 연마에 힘썼다.

이를테면 ‘비오는 날, 하루 중 밤, 일년 중 겨울’이 한가하거나 조용하거나 넉넉한 때이기 때문에 독서와 학문에 전념했다. 이른바 독서삼여(讀書三餘)가 그것이다.

빗소리의 리듬에 맞춰 소리내어 책을 읽기도 하고, 쉼이나 잠을 청하는 고요한 밤시간에 명상하듯이 경서를 탐독하며, 동면하는 침잠의 계절에 시문과 기예로 내면을 채워가는 독서와 강학은 선비와 유현(儒賢)의 의례적인 관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대의 양상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제각각 다른 현대를 살아가면서 필자는 ‘나만의 삼여(三餘)’를 즐기고 있다.

즉, 독서삼여를 나의 주관과 취향에 맞춰 살리고 즐거움과 보람을 누려가며 체득한 일종의 자기 만족법인 셈이다. 나름의 특성을 살려 ‘심신삼여(心身三餘)’로 지칭한 필자의 삼여는 서예, 자전거, 교유(交遊)이다.

35년여 서예에 매료돼 정진해도 아직 허접하기 이를 데 없지만, 먹과 붓과의 인연을 통해 나름 위안과 흡족을 느껴가고 있으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한편의 작품 완성을 위해 고금동서의 시문을 더 많이 접하고 궁구하며 창작해야 하는데, 틈날 때마다 더 깊이 천착하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으로는 10여년 전부터 즐겨 타오던 자전거다. 그 옛날 말을 타고 주유천하 하듯이 은륜을 굴리며 전국의 강줄기와 바닷가를 누비며 자락(自樂)을 일삼고 있다. 자전거 출퇴근으로 생활 속의 운동으로 여기며 건강한 습관과 두 바퀴 여행까지 겸할 수 있으니, 가히 고마운 애마임에 틀림 없다고나 할까.

마지막으로는 좋은 분들과의 교분을 통한 교유다. 어쩌면 진정한 만남은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하는 담백한 물 같은 사귐이 아닐까? 남녀노소, 고하귀천없이 유유상종으로 어울리고 의기투합하면 그 자체가 그윽하고 향기로워질 것이다.

장마가 주춤하던 지난 주말, 필자는 자전거를 심야버스에 싣고 상경해 임진각~인천~강화도를 주유하는 라이딩을 하며 저녁에는 친구들도 만나 회포를 푸니 넉넉하기만 했다. 거기에 어떤 친구에게는 서예작품이 쓰여진 부채까지 선물해주고 왔으니, 나만의 삼여를 실천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