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락’ 공연서 힙합·국악 협연
‘씻김굿’으로 코로나 시대 위로

“내가 누구냐! 남해 용왕이니라”(Who am I! I’mthe dragon king from the southern sea) ‘힙합 대부’ 타이거JK가 뒷짐을 지고 무대에 서서 영어로 첫 마디를 뱉었다. 타이거JK와 래퍼 비지(Bizzy)는 랩으로 재구성한 ‘수궁가’ 대목을 마치 아니리(판소리대사)처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유경화 ‘2020 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이 두드리는 장구의 그루브 위에서 두 래퍼는 자유롭게 뛰어놀았다. 대금 가락이 어우러지며 신명을 더했다. 힙합의 운율을 입은 21세기 수궁가는 유튜브 화면 너머로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뿜었다.

국악과 대중음악의 결합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요즘, 독특한 협연 한 편이 지난 24·25일 온라인 중계로 관객을 만났다. 이번에는 힙합과 국악의 만남이다.

타이거JK와 철현금·타악 연주자인 유경화 예술감독, 광고·뮤직비디오 감독 조풍연이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 폐막공연 ‘그레이트 크로스’(Great Cross)에서 의기투합했다.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약 1시간 동안 펼쳐진 공연은 제목처럼 국악과 힙합, 그리고 영상 기술을 결합했다.

6곡의 레퍼토리는 타이거JK의 대표곡과 전통음악을 넘나들었다. ‘수궁가’ 한 판이 끝나자 유경화 감독의 편종 독주가 시작됐다. 엄숙한 분위기는 순간 반전하면서 의외로 드렁큰타이거 4집 수록곡 ‘엄지손가락’으로 이어졌다.

궁중음악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수제천’과 힙합을 매시업(mashup·융합)했다.

타이거JK·비지의 래핑은 거문고와 기타를 합친 듯 야성적인 철현금 음색과 현대적으로 어울렸다.

철현금 선율에 타이거JK가 사자후처럼 랩을 쏟아낸 ‘몬스터’와 즉흥 연주로 빚어낸 ‘시나위’도 공연 초반 분위기를 달궜다.

조풍연 감독이 원형 무대에 매핑한 영상은 시시각각 다르게 일렁이면서 감각적인 미장센을 만들어냈다.

유튜브 댓글 창에는 국내외 관객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25일 중계 때는 타이거JK가 직접 댓글 창에 합류했다. 그는 ‘수궁가’ 스토리 등 공연 내용과 작업 소감을 한국어와 영어로 설명하며 소통했다.

타이거JK는 연합뉴스에 “분명 이 두 분(조풍연·유경화 감독)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이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항상 그렇듯이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1집 때부터 우리의 소리에 관심이 많았던 저로서는 너무 좋은 기회이고 영광이기도 했다”고 공연에 함께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결과물’인 무대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과정’을 함께 보여준 것도 특징적이었다. 래퍼와 전통악기·서양악기 연주자, 프로듀서의 만남에서부터 공연 제작 과정, 인터뷰 등을 중간중간 영상으로 삽입했다.

국악과 힙합의 서로 다른 리듬을 융합하는 것은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타이거JK와 비지는 국악 박자에 어떻게 ‘플로우’를 타야 할지 처음에는 난감해한다.

그러나 제작진들은 마음을 열며 차츰 접점을 찾아간다. 서로 다른 음악적 문법이 어떻게 충돌하며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는지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비지는 “작업을 진행하며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힘들게 시간과 싸움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같은 이야기를 다른 느낌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공연을 택해야 했다.

타이거JK에게도 인터넷 콘텐츠 출연 외에는 거의 반년만의 무대였다.

관객을 만나기 어려운 현실이 답답하지만, 장르를 넘어 음악인들이 시대를 위로할 방법은 결국 하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음악입니다, 음악.”(진도씻김굿 보유자인 고 박병천 명인의 아들 박성훈, 영상 중)마지막 곡은 ‘유경화의 씻김’. 전통 씻김굿과 철현금 연주, 랩을 재구성해 코로나19로 상처받은 이들에게는 위로를,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에게는 응원을 건네고자 한 곡이다. 타이거JK와 비지가 절절하게 토해낸 랩에 이어 박성훈의 애끊는 “잘 가시오” 소리가 여운을 남긴다.

“저희가 드리고 싶은 메시지는 ‘위로’였습니다. 우리의 실험과 열정을 통해 잠시나마 힘든 마음을 달래시길 바랐습니다. 우리 정통 소리도 어렵지 않다는 걸 알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타이거JK)“변화에 익숙해져야겠지만, 공연과 무대에 굶주린 많은 아티스트들과 팬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다양한 방향으로 서로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비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