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저는 체육고 동기인 데다 선수 출신입니다. 피는 못 속인다고, 6살 난 아들한테서 벌써부터 운동소질이 보여요. 그래도 저희 부부는 절대 안 시킬 겁니다. 취미라면 모를까. 힘들어요, 모든 게.”

포항시 북구 장성동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강모(35)씨는 아이가 운동선수를 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말릴 것이라고 했다. 학창시절 유도부 선수로 활동하면서 초등학생 때부터 운동부 생활을 해본 터라 더 반대한다고 했다. 강씨는 “현역 선수로 활동 중인 지인들도 아들, 딸이 제발 운동만은 안 하길 바란다”면서 “운동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선후배 간 위계질서나 운동부 분위기, 악습과 같은 그 외의 것들을 견디는 게 더 만만치않다”고 털어놨다.

학생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과 폭언은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을 계기로 운동부 학생선수를 둔 학부모를 비롯해 운동선수를 꿈꾸는 자녀가 있는 부모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폭력이나 폭언이 근절되기는커녕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어 학생선수의 인권 보호와 운동부 운영에 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학생 선수에 대한 인권침해는 실제로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6만3천211명 중 9천35명(15.7%)가 언어폭력을 당했고 8천440명(14.7%)은 신체폭력, 2천212명(3.8%)은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은 비일비재했으며, 상당수 학생이 성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권위는 당시 조사 결과에 대해 “학생선수들이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음에도 공적인 피해구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주요 가해자는 감독이나 코치와 같은 지도자(56.0%)인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부 선배나 또래 선수도 39.8%나 됐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학교 축구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주부 이모(42·포항시 북구)씨는 “아직 우리 사회에 운동부 폭력이 여전히 일어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아이가 워낙 축구를 좋아해 반대하는 뜻을 굽혔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생기면 언제든 그만두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당국은 학교 운동부 전수조사에 나서 폭력이나 따돌림, 가혹행위 관련자는 영구 퇴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경북도교육청은 지난 6일부터 오는 17일까지 도내 370여개 초·중·고 운동부 학생선수 3천930명을 대상으로 인권실태 점검에 나섰다. 정작 학생선수와 학부모들은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뻔한 사과에 늑장 대응만 반복한다”고 지적한다. 앞서 인권위도 2007년 초등학교 운동부 합숙소 폐지와 중·고등학교 합숙소 개선을 권고했지만, 10년이 넘도록 운동부 합숙소는 인권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인식 개선과 시스템 발전을 통해 폭력 근절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학생선수의 인권보호를 가이드라인을 통해 명시하고 있다. 폭력 및 성폭력 발생 가능이 있는 환경 자체를 조성하지 않도록 하며 폭력 예방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폭력 신고 시에는 신원 보장 아래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별도의 기구를 두고 있다. 대한체육회도 지난 2018년 선수권익보호팀을 신설하고 스포츠 인권 포털을 개설하는 등 형식적으로나마 자율적인 신고와 조사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이후에도 가혹 행위와 성추문 폭로까지 이어지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포항지역의 한 체육교사는 “과거 1970∼1980년대 훈육 방식에 성적 지상주의와 금메달 제일주의가 만연한 분위기로 그릇된 관행이 뿌리내린 탓”이라며 “학생선수에 대한 신체적 가혹 행위나 폭행, 심지어 부적절한 뒷돈 요구까지 학교 운동부를 둘러싼 잡음과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어 교육 당국의 강도 높은 자정 노력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민정기자

    김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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