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중매에는 ‘잘 하면 술이 서 말이요, 잘못하면 뺨이 석 대’라는 속담이 따라다닌다. 속담은 중매가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어렵다는 경계를 전한다. 사전적 의미로 혼인은 억지로 권할 일은 못 된다는 말이기도 하고, 중매 또한 함부로 할 일이 못 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깜냥도 안 되는 서툰 사람이 큰일을 망친다는 뜻의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속담도 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세기적 과업을 목표로 하는 북미회담의 중매 역할을 자임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북한이 예고했던 대로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저들이 끝내 ’남북 합의’ 전면 파기 수순에 돌입하는 사태를 보면서 왕조 세습국가 북한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한다. 요 몇 해 남북이 ‘봄이 온다’, ‘봄이 왔다’ 운운하며 열광했던 ‘평화의 봄’은 연락사무소 폭파 쇼로 끝장이 났다.

평화는 ‘평화 타령’만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다. 굴종으로 잠시 유보한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무래도 신변이 무탈하지 않은 것 같은 김정은의 형편과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지 사이에서 한반도의 작금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우리의 의지와 아무 상관 없이 미지의 시한폭탄이 작동되고 있는 느낌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코너에 몰린 것인가. 지난 일들을 차례로 복기해보면, 북미회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섣부른 ‘낙관’이 중대한 원인으로 짚어진다. 때마침 폭로되고 있는 존 볼턴 전 미국 대통령 안보보좌관의 고백 속에 힌트가 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에 전혀 관심이 없이 사진찍기에 혈안이 됐던 트럼프와 내부 갈등을 빚은 볼턴의 장난질을 간파해내지 못한 패착이었던 것으로 유추된다.

절박했던 것은 우리뿐이었다. 집권 이래 ‘세계 대통령’의 지위를 포기하고 국수주의(國粹主義)적 외교 행태를 보인 트럼프는 한반도의 운명을 한바탕 체스판처럼 다뤘는데, 청와대는 그걸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북미회담에 대한 문 대통령의 희망 섞인 낙관은 결국 양쪽으로부터 세찬 원망을 듣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빚고 말았다. ‘조선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의 근본적 차이를 묵과한 문 대통령의 전술이 실패로 귀결된 것이다.

이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반미 운동권이 ‘대북 전단’과 ‘한미워킹 그룹’을 철천지원수 삼아 잡드리하는 행태에서는 그 어떤 해법도 있지 않다. 희생양을 자처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퇴임사에 성성한 날카로운 가시들을 잘 읽어야 한다. 최소한 지금처럼 낭만주의 평화론에 찌든, ‘무능한’ 청와대 참모들과 국정원으로는 출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평화 쇼를 연장하며 시간을 번 북한의 핵 무력은 한층 업그레이드돼 있을 게 분명하다. 시계 제로의 안개 속에 묻힌 나라의 아찔한 운명 앞에, 우리는 연일 조마조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