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조선의 선비 중 사람들이 한편에서는 기인이라 하였고, 또 다른 편에서는 법도에 어긋난 사람이라 하여 글은 취하되 사람은 사귀기를 꺼렸던 선비가 있었으니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임제(1549~1587)다. 그는 초서에 능하였으며 호방한 필치로 막힘이 없이 써내려간 풍모를 통해 구속을 싫어하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던 기개와 곧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글공부에 뜻을 두어 몇 번 과거에도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하여 28세가 넘어 벼슬길에 나아갔다. 하지만 당시 조정에서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서로 다투는 당파싸움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명산을 유람하였다.

어느 날 임제가 잔치 집에 갔다 술이 취했다. 신을 신고 문을 나서는데 신발을 짝짝이로 신었다. 이를 보고 하인이 곁에서 왼발은 가죽신이고 오른발엔 나막신을 신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술 취한 임제는 끄떡도 않고 그냥 말 위로 훌쩍 올라타며 하인에게 하는 말이 ‘길 왼편에서 보는 자는 저 사람이 가죽신을 신었구나 할거고, 길 오른편에서 본 자는 저 사람이 나막신을 신었구나 할테니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냐! 어서 가자.’ 맞는 말이다. 말 탄 사람의 신발은 한 쪽만 보인다. 짝짝으로 신을 신었을 줄은 누구도 짐작 못한다. 각자 본 것만 가지고 반대쪽도 같은 신발이려니 하며 생각을 결정짓는다.

사람의 판단 역시 항상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된다. 한쪽만 보고 다른 쪽도 으레 그렇겠지 하는 생각이나 아예 반대편은 보지도 않으려고 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힌다. 하지만 막상 말에서 내려 보면 그때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을 알지만 이미 늦었다. 이렇게 한쪽만 보는 외눈으로 결정을 내리면 이런 생각들은 늘 걸림돌이 된다. 이러한 외눈박이 결정이 국가에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사관(史觀)이다. 역사를 양 눈으로 바로 보려 하지 않고 이념의 틀에 묶여 외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현대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들이 뻔히 두 눈을 뜨고 과거 속의 지도자들 공과(功過)를 읽고 있는데도 국사책은 너덜거린다. 국가의 가치관이 흔들리면 국가지탱에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독립유공자가 친일파로,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로 바뀌는 외눈박이 역사를 평가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대한민국 수립 7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나라를 만들고 지키고 키운 이들을 친일의 오명 속에 빠뜨려 파묻으려 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이고 누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인가.

이 사회에서 활동 중인 수많은 시민단체는 시민이 스스로 모여 한 개인이나 집단이익의 추구가 아니라 환경이나 인권과 같은 사회 공동체 발전을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는 사회정의로 포장된 개인들의 영욕을 목표로 하는 집단행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짝짝이 신발이 한 눈에 들어오는 위치는 어디인가! 바로 헛된 약속과 거짓말에 현혹되지 않을 위치를 찾는 게 국민들에게 던져진 숙제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더욱 무거운 난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외눈박이 역사의 표본’이라고 규정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