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는 날입니다. 한 달에 한 번, 흡입기와 천식 비염약 등을 처방 받습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호흡기내과를 찾는 게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올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랍니다. 여름이 채 오지도 않았는데 36도가 넘는데다 습도마저 높습니다. 차문을 열자마자 숨이 막히고 기침이 납니다. 비상용 인삼 캔디 한 알을 머금습니다. 사실 출발할 땐 더운 건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후식으로 달달한 케이크까지 먹은 터라 도리어 상기된 기분이었습니다.

병원 마당 천막, 1차로 체온을 잽니다. 무사통과입니다. 호흡기내과가 목적지라고 했더니, 안내하는 분이 병원 모퉁이를 가리킵니다. 그 새 출입구가 바뀌었습니다. 공용 출입구에서 호흡기 환자 전용 출입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2층에 있던 호흡기내과는 입구와 가까운 1층 구석자리로 옮겨졌습니다. 모두를 위한 세심한 배려이자 온당한 조치입니다. 호흡기 질환이야말로 코로나 앞에서 주의가 필요한 기저질환이니까요. 취약한 면역력으로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건장한 이들에 비해 몇 배나 위험할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묘한 긴박감과 미세한 파장이 일어납니다.

진료실 입구, 2차로 체온을 잽니다. 미열이 있나 봅니다. 오늘 같은 날씨엔 다들 체온이 조금 높으니 괜찮다며 간호사는 진료 대기실을 안내합니다. 대기실 앞 접수대, 3차로 귀의 체온을 잽니다. 미심쩍은지 왼쪽 귀로 바꿔 잽니다. 37. 7도. 양쪽 귀 체온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규정 체온보다 높아 진료가 불가하답니다. 비대면으로 처방전은 받을 수 있답니다. 그토록 원했던 비대면 진료가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성사 되게 생겼습니다.

다시 진료실 입구, 밀려나 처방전을 기다리는 동안 4차로 체온을 잽니다. 여전히 열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담당 간호사가 의자를 권합니다. 상냥함과 친절함을 장착했지만 그 맘이 편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감 있는 환자를 대면할 텐데 그 스트레스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앉는 시늉만 하다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마음 씀이 진심으로 느껴져 더 미안해집니다. 친절 카드 작성으로 화답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걸로 보아 저 스스로 당황한 게 분명합니다. 멀쩡한데 체온이 높다니 어인 일일까, 그 생각에만 갇혀 있습니다.

처방전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자주 들어도 금세 까먹는 각종 꽃들이 병원 뜰을 장식합니다. 꽃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대궁을 꼿꼿이 말아 올리지는 못합니다. 등나무 벤치에 맞춤한 그늘이 집니다. 가서 앉습니다. 왜 열이 나지? 하기야 밖의 열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 지경의 날씨이니 열이 오르지 않는 게 이상할지도 모릅니다. 높은 온도와 습도, 에어컨을 켠 차 안과 바깥의 온도 차, 달라진 병원 환경, 숨 돌릴 틈도 없이 재고 또 잰 체온, 가장 높은 체온의 시간은 늦은 오후라는 점 등이 갑작스레 열이 돋은 원인으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모든 것에 부대껴 열을 방출하지 못한 제 몸이 일시적으로 과부하를 일으킨 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그 와중에 강력하게 덧붙이고 싶은 요인이 있으니, 단 맛 중독이 그것입니다. 후식으로 먹은 케이크와 차에서 내릴 때 긴급으로 입가심한 인삼 캔디 말입니다. 저는 단 것을 유달리 좋아합니다. ‘달콤함’을 먹으면 가라앉았던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슈가 하이(sugar high)라는 말이 제게는 통하는 것 같습니다. 설탕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피로가 풀리고 흥분감 같은 걸 느끼는 현상 말입니다. 그 효과가 소멸되면 안 먹은 만 못하는데도 자꾸 찾게 됩니다. 완전한 공복에는 그런 욕구가 덜한데, 식후엔 뭔가 허전함이 밀려오면서 단 것이 뇌리에 맴돕니다. 욕구가 채워지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면서 활기가 돕니다. 높아진 오늘의 열은 여러 요인 못지않게 슈가 하이 현상도 한몫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소설가

단맛은 생래적입니다. 기억의 원형처럼 자리 잡은 엄마 젖의 달콤함이 그 매혹적 중독의 출발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설탕맛에 홀릭 된 제 흥분지수가 열감에 기름 역할을 한 건 아닐까요. 몸은 마음의 영향을 받습니다. 설탕에 기댄 제 심리 상태가 피톨도 달뜨게 했나 봅니다. 여러 약점이 드러남에도 쉽사리 단맛의 쾌감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커피 없이 못 산 ‘커피 칸타타’의 여주인공처럼 노래해 봅니다. 다 없어도 괜찮아. 하지만 설탕만은 못 끊어. 열이 돋는대도 순간의 기쁨이 보장되는 설탕만은 못 끊어.

사랑에 빠지는 게 죄가 아니듯, 적당한(!) 달콤함에 빠지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각설하고 처방약을 받아들고 귀가한 뒤 체온부터 쟀습니다. 정상입니다. 멀쩡하게 돌아온 몸의 온도, 혹시라도 당 떨어져 그런가 싶어 제 눈은 벌써 남은 케이크가 든 냉장고를 더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