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느새 신록이 짙어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이른바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낫다는 때다. 온통 푸르름으로 일렁이는 산과 들에는 싱싱한 기운과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세상이 코로나19의 난마로 어수선해도 계절은 차분하고 왕성하게 풀과 줄기, 잎사귀를 흔들며 초여름을 노래하고 있다.

벌써 한 해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데, 세상만사는 희대의 요지경처럼 여전히 복잡다단하기만 하다. 이 또한 멀지 않아 가닥이 잡히고 순순히 지나가겠지만, 여파와 상흔은 좀처럼 가시지 않을 듯하다. 자연현상의 경외함과 세상살이가 만만찮음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는 것 같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기치 못한 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유연해지고, 각자도생의 방편을 꾸준한 각도로 추스려 나가야 하는 지혜를 얻었다고나 할까?

햇볕이 뜨거워지는 여름날이 다가오면 시원한 그늘을 찾기 마련이다. 커다란 느티나무나 굴참나무 아래면 더 좋을 것 같고 간간이 잎새 흔드는 바람마저 불어온다면 한결 낫다. 그러한 곳에서 여유롭게 쉼을 누리거나 한가롭게 낮잠을 즐긴다면 그야말로 신선이 따로 없을 정도다. 여름날에 흔하게 느끼거나 접할 수 있는 풍경, 그러한 쉼과 여유를 통해 사람들은 일상의 찌든 때를 털고 마음을 정리하며 보다 평온함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쉼이란 무엇일까? 한자를 풀이해 보면 사람(人)이 나무(木) 옆에 있는 모습(休)으로, 글자 그대로 나무 옆에 머물며 마음을 편히 가지는 것이다. 예컨대,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지만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집을 떠나 나무 그늘 아래서 그냥 쉬거나 몸과 마음을 느긋하고 편안하게 두는 것이다. 굳이 나무 그늘이 아니더라도 숲길이나 들길을 거닐다 보면 번잡했던 일상이 정리되고 마음이 안정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쉼이란 그런 것, 마음과 정신의 각박함을 접어두고 잠시나마 영혼의 안식처를 찾으며 일탈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그러나 나무와 함께 즐기는 것이 쉼이라면, 숲이나 산, 강과 바다와 함께 하는 누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나무에서 느껴지는 디테일도 맛보고 숲이나 물에서 풍기는 그윽함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각기 다른 맛과 느낌이 있겠지만, 세밀하게 느끼는 멋과 유장하게 젖어드는 울림이 보다 색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도 보고 숲도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춰야 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일상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코로나19의 엄습이 있을지라도 나무와 숲을 볼 줄 아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즉각적이고 근시적, 장기적인 대응과 원시적인 방안을 유효 적절하게 입안하고 운용해야 한다. 이미 신속한 초기 대처와 효과적인 방역, 검사체계로 세계의 정평이 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나무와 숲은 결코 단기간에 자라거나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축적 속에 나름의 생리와 섭리로 지금까지 존속해왔고 영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