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치열한 경쟁을 살아가는 이 땅의 중년 가장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50대. 앞만 보고 살다가 잠시 되돌아보게 되는 나이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 모든 걸 버리고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살아온 날에 대한 회환과 남은 생의 변곡점을 어떻게 통과해야할까 하는 고뇌에 이르면 불쑥 짊어진 짐을 모두 내려놓고 싶어진다. 물론 짐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안다. 대책 없는 푸념과 넋두리일 수밖에 없다. 앞만 보고 달려온 것에 대한 보상은 어디서 어떻게 받을 것인가?

이제 지난날 자신감에 찬 질주는 숨도 차고 힘겨워 후진의 추격을 물끄러미 보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거친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항구에 정박 중인 자식들의 인생항로를 위한 선장으로서 역할도 버겁긴 마찬가지다. 절대적 지지자로 생각했던 부부간극은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틈을 메우기 힘들 정도로 벌어져 있다. 바쁜 일상으로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언제나 내가 하자는 대로 움직여 줬던 몸뚱이가 어느 날 매몰차게 나를 외면하면 어쩌지 하는 건강염려증도 뇌리 한쪽을 떠나지 않는다. 이런 저런 불안정과 불안감을 술로 잊으려 해보지만 건강 하향곡선 탓에 능사가 아님을 안다. 주말이면 골프모임, 등산모임으로 구심력 잃은 공처럼 이쪽저쪽 튀어나가 기웃기웃 해보지만 이것 역시 허한 가슴을 채우지 못한다. 그러다 어쩔수 없이 또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50대의 중년이다. ‘무소유’, ‘내려놓아야 한다’는 법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니 아직은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은 자전거 삶이다. 질주본능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힘들게 페달을 밟게 된다. 하지만 탄력 좋은 고무줄도 당기고 놓기를 반복하면 결국은 끊어진다. 중년의 삶, 속도를 늦추고 마디마디 휴식이 필요하다.

케렌시아(Querencia)란 스페인어가 있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말이다. 투우장의 투우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재충전의 공간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중년위기의 탈출, 나만의 케렌시아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이 땅의 대부분 50대 가장들은 어린 시절 여러 형제들이 방 하나의 같은 공간에서 지냈다. 병영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이라는 조직에 몸을 담았다. ‘함께’, ‘단체’, ‘집단’생활의 연속이었다. 나라 전체가 압축 성장 과정이었기에 개인에겐 잠깐의 휴식과 여유도 터부시된 것 같다. 100미터 달리기 같은 삶을 살아왔다. 심리적·공간적 나만의 케렌시아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나만의 케렌시아를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곳이 꼭 조용한 산사이거나 물리적 휴식공간이 아니어도 좋다. 바쁜 일상 속에 복잡한 관계를 끊고 잠시라도 오롯이 자신의 시간만을 가질 수 있는 장소나 꺼리라면 어떤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 시간만큼은 휴대폰은 꺼두는 게 좋을 것 같다 .

“혹시 그동안 급한 카톡 오면 어쩌지?” 좀 무시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