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따뜻해져 완연한 여름이 되면 몸도 마음도 조금씩은 활동적인 상태가 된다. 이번 여름에야말로 책을 좀 읽고자 마음이 동한 분들도 적지 않으시리라. 눈에 띄게 한산해진 서점에 들러 서가를 살펴보면, 이 계절에 읽기에 좋은 시집이며, 소설집들의 제목이 적잖게 눈에 띈다. 요즘 나오는 문학책들은 대부분 한 번 들으면 그야말로 쉽고 재치 있는 제목들을 갖고 있어 선뜻 쉽게 꺼내볼 수 있다.

예전 시인들은 분명 시어의 메타포, 즉 은유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하여,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그 단어에 달라붙어 있는 풍부한 의미들을 살리고자 애썼다. 반면, 요즘 시인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독자의 공감을 부른다. ‘진달래꽃’이라는 단어 하나에 한 인간이 살아온 삶과 그 분위기, 욕망 등이 다 담겨 그 가벼움 속에 둔중하고 두터운 의미들이 들어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면, ‘진달래꽃’이야 그저 아무 것도 가리키지 않는 것이라는 시대도 있는 법이니 어느 쪽이 더 낫다거나 더 시의 본질에 가깝다거나 할 수는 없다.

최근 일본 정부 환경상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90CE>)의 독특한 화법이 여기저기에서 화제였다. 인터넷에는 재밌는 밈(meme)으로 다뤄져 여기저기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한편,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그의 화법 중 흥미로운 것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지금대로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야말로 일본은 지금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말하고 있는데, 그 원인과 결과가 동어이다. 논리적인 언어 사용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의아한 기분이 들 만하다.

물론 정부각료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겠지만, 시를 좀 읽어보신 독자들이라면 이런 어법이 그리 낯설지 않은 분이 많을 것이다. 1993년 성철 스님이 열반에 드실 무렵, 남기셨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한 마디의 말은 우리 사회 전반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또 있을까. 또한 이 말을 산이 산이며, 물은 물이라는 그대로의 말로 받아들였던 사람이 또 있을까.

우리는 하나의 말이 단지 하나의 의미만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말 속에는 그 말의 표면적 의미를 넘어서는 온갖 의미들이 착 달라붙어 있다. 때로는 비꼼 같은 대상에 대한 태도가 언어에 포함되기도 하고, 그것을 위해 반어나 역설 같은 수사법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또 우리가 시를 읽을 때 하나의 단어에서 들려오는 화성과도 같은 울림은 바로 그 시가 펼쳐놓은 은유와 상징의 그물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 기형도의 ‘빈집’에서 온갖 종류의 음색을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인간의 언어 사용이 고도화된 시대 속에서는 자칫 고색창연한 언어적 전통이 무겁게 내려앉기 쉽다. 윗사람의 한 마디를 이리저리 곱씹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진의를 파악해야 했던 사회의 분위기는 얼마나 무거운가. 분명 그런 시대의 시는 그 고도화된 언어를 더 나은 방향으로 풍요롭게 표현하여 방향을 틀거나 오히려 당연한 것은 당연하게 말해버린다. 모두가 하나의 말을 듣고 하나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대에는 하나의 당연한 말이 잔잔한 물 위의 파도가 되는 것이다. 앞서 일본의 환경상은 말의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에서 말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니, 그런 어법을 ‘잘못’ 이용했던 셈이고, 웃음거리가 될 만하다.

다시, 서가에 꽂혀 있는 시집들의 제목을 쭉 눈으로 훑는다. 어떤 제목은 무언가 풍부한 함의가 담겨 있을 것만 같아서 눈길이 가고. 어떤 제목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어서 눈길이 간다. 시의 언어에 있어서 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그때의 내 기분과 계절의 냄새가 있을 뿐이다.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