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코로나19의 세계적 팬데믹(pandemic)은 세계정치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예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가 “폭풍은 지나가고 인류는 살아남을 테지만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 것”이라고 한 것처럼, 이 ‘새로운 세상’은 우리에게 ‘도전이자 기회’이다.

세계 각국은 감염병 확산에 대처하기 위하여 자국 우선주의와 각자도생(各自圖生)전략을 채택하였다. 세계정치질서를 주도해 왔던 미국의 리더십은 크게 실추되었고, 미국과 중국은 서로 상대방에게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향후 전략적 패권경쟁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유럽을 표방했던 EU회원국들 역시 위기상황에서는 국익과 자국민 보호가 우선이었고, 강대국의 재정지원에 종속되어 있는 WHO는 국제기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코로나는 경제세계화의 상징이었던 물자와 인력의 자유로운 왕래를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진출기업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이는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을 촉진하고 있다. 그 동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수반되어 온 부작용과 취약성이 반세계화(anti­globalization)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post­corona)시대의 세계정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코로나의 대처과정에서 글로벌 파워(global power)인 G2의 리더십이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견국(middle power)들의 역할공간이 확대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료시스템의 부실이 드러남으로써 선진국들의 신화가 깨어졌고, 코로나 진원지인 중국의 강압적·음성적 대응방식은 결코 방역모델이 될 수 없다. 반면에 최소한의 통제 속에서 민주적이고 투명한 대응으로 선방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의 역할과 책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현행 ‘세계화 분업체계’의 위험성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제공급망의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특히 과학기술이 낙후한 후진국들의 고통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경제적 남북문제도 민감한 이슈로 부상될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 감염병 확산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정치경제질서의 향방은 상당히 유동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경을 초월하는 질병·마약·환경·테러 등의 초국가적 인간안보(human security) 이슈들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각자도생 전략은 한계가 있다. 더욱이 우리는 GDP대비 무역의존도가 70%에 달하는 개방경제이기 때문에 국제교류협력이 생존과 번영의 길이다. 따라서 IT강국으로서 향후 새로이 형성될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논의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국력과 빈부의 격차를 넘어 국제적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제시하는 새로운 세계의 표준, 즉 ‘뉴 노멀(new normal)’은 우리의 국익을 증대시키는 동시에 인류의 미래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