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보수는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보수가 올바른 혁신의 길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혁신을 실천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현재 자중지란(自中之亂)을 겪고 있는 통합당으로서는 ‘사즉생(死卽生)’의 비장한 각오가 요구되는 조건들이다.

보수의 재기를 위한 혁신의 길은 무엇인가? 혁신의 전제는 총선 참패에 대한 참회와 자성이다. ‘정권심판’을 외쳤던 보수가 오히려 ‘야당심판’을 당했다. 유권자들은 그 원인이 ‘여당이 잘해서’(22%)가 아니라 ‘야당이 못해서’(61%)라고 답했다. 2040세대의 통합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80%를 넘고 있다. 선거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다. 통합당은 진보의 위선과 반칙을 비판했지만 보수의 품격과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핵심당원들의 평균연령이 60세이고, 지역분포는 영남이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낡고 늙은 꼰대당’으로 각인되었고, 강남당·영남당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극우 태극기부대에 휘둘리면서 포용성과 확장성을 잃었다.

이러한 사실은 혁신의 주도세력이 ‘수도권의 3040세대’가 되어야하며, 혁신의 방향은 ‘포용성과 실용성의 확대’임을 말해준다. 혁신을 위해서는 경직된 보수가 아니라 수도권에서 격전을 치른 3040세대가 주도해야 민의(民意), 특히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도층의 표심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통합당이 보수층만 바라보고 정치를 했으니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금수저는 흙수저의 고통을 모른다.”는 비판은 통합당의 대중성과 공감능력이 부족함을 말해준다. 따라서 보수의 가치인 자유·안보·법치뿐만 아니라 빈부격차·청년실업·서민경제 등 시대적 아픔도 함께할 수 있는 포용성, 그리고 이념투쟁보다는 국민의 생활 속에 뿌리내릴 수 있는 실용성이 크게 확대되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변화와 혁신을 실천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통합당은 선거패배 때마다 비대위를 구성하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해 놓고서는 말뿐이었다. 혁신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국민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거짓말까지 했으니 총선참패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보수의 재기는 국민이 통합당의 변화와 혁신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좋은 약이 입에 쓴 것처럼 ‘혁신의 길은 고통의 길’이다.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며 때로는 자기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낡은 것을 버려야 새 것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늙은 보수·웰빙 보수·기득권 보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자 시련이다.

정치인으로서 소명의식이 투철하면 혁신의 고통도 즐거움이 된다. 초심으로 돌아가 대의(大義)에 충실하면 얼마든지 혁신할 수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혁신할 수 없다면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물러나라. 나를 바꾸는 혁신도 싫고 권력도 내려놓지 않겠다면 결국 당과 함께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