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골동품 수준의 기계부품들로 가득한 낡은 공장 하나가 있다. 지붕까지 새고 기둥과 벽에 금까지 가 있는 데다가 기계들은 잇달아 고장 나고 부서지고 수시로 멈춰 서곤 한다. 구닥다리 생산품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무시당한 지 오래됐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무능한 관리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조금씩 사주는 일부 소비자들을 믿고 공장 경영권에만 매달린다.

총선에서 참패를 당해 초토화되다시피 한 당을 추스를 구원투수로 지명된 김종인 전 선거대책위원장을 놓고 미래통합당이 시끌벅적하다. 김 전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무기한·전권’ 요구를 시사하자 반발하고 있다. 논란 확산에 김종인은 “임기, 언제든 그만둘 것”이라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

전쟁터에서 근근이 살아남은 다선의원들을 중심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 권한을 용납할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선의로 해석하자면, 당내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은 순정, 제1야당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 속에 ‘자기 정치’ 욕심의 발로는 정녕 추호도 없을 것인가.

경남에서 대구로 날아와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전 대표가 거품을 물었다. 비대위 카드를 찬성하던 그는 김종인이 자신을 겨냥해 “시효가 끝났다”고 잘라 말하자 표변했다. 홍준표는 지난 1993년 동화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 전 위원장의 전력을 소환해 수사 당시의 장면까지 시시콜콜 묘사하며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홍준표의 구상유취한 행태는 미래통합당이 왜 이대로는 안 되는 건지, 그 퀴퀴한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종인이 던지는 화두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하다 싶을 수 있지만, 그 메시지는 대단히 적확하다. ‘70년대 생 경제전문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상징하고 있는 미래지향적 의미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냥 자기들끼리 해보겠다는 통합당 일부 중진들의 심사는 도대체 뭔가. 21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통합당 득표율에서 민주당과의 차이가 고작 8%라고 우쭐대는가.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62%를 훌쩍 넘고, 민주당 43%·통합당 22%로 나타난 갤럽의 지지도 조사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참인가. 오해하지 마시라. 41%, 그거 통합당 좋아서 찍은 표 아니다.

굳이 김종인이 아니더라도 미래통합당은 ‘창조적 파괴’ 말고 길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TK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꼴통보수 본산’ 이미지를 완전히 털어낼 기회이기도 하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다수 국민이 품고 있는 ‘중도실용 정치’에 대한 갈망에 주목해야 한다. ‘보수’가 살길은 ‘중도실용’으로 재무장하는 외길뿐이다. ‘TK 정치’가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지난 4·15총선은 ‘보수’와 ‘TK’가 이제 대한민국의 주류가 아님을 충분히 증명했다. 담대한 설계도를 놓고 ‘보수정치’의 낡은 공장을 철저히 때려 부숴야 한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