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물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 돋우는 잎새달이다. 진초록 위에 연초록 잎새 겹쳐 피어나면서 나무들은 신음인듯 환희인듯 일제히 잎차례를 벌이고 있다. 혹한의 시련을 이겨낸 인고의 몸짓같은 여린 이파리들이 앙증스럽게 손 흔들며 약동하는 봄날을 환호하는 듯하다.

몇 차례의 신열같은 꽃 잔치 속에 온갖 생물들은 저마다의 존재감으로 생육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풀과 나무들은 새로운 싹과 잎사귀를 드리우고 곤충과 동물들은 본격적인 먹이활동을 시작하면서 번식과 생장의 사이클에 접어들고 있다. 이처럼 자연만물은 때가 되면 돋아나고 피어나고 나타나 익숙한 듯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현상들은 결코 저절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 것이다. 초목은 차디찬 땅 속에서도 부단히 새봄을 준비하는 일손을 멈추질 않았고, 동면의 겨울나기 속에서도 생명체는 나름의 생존법을 익혀 왔었기에 새로운 싹과 꽃을 피우며 개체를 연명해가는 것이 아닐까?

자연은 이렇게 자생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당연하게 이뤄지는 일은 하나도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온갖 만물의 존속과 조화,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해마다 낡은 것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익숙함을 보여왔었기에 생성과 소멸, 진화를 거듭하면서 현재까지 이르렀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리라. 그래서 새로운 것들은 낡은 것에서 싹트고 희망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라 했던가.

세상도 자연도 늘 변화하기 마련이다. 세월이 가고 오고 계절이 바뀌듯이 세상의 모든 유무형의 물질들은 시시각각 천변만화(千變萬化)한다. 자연과 세상은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사이, 작거나 크게, 느리거나 빠르게, 조금씩 변하고 확연히 달라지며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 물론 변화하되 변함없는 것들도 있긴 하지만, 시대나 상황에 따라 적응하고 변화,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하고 퇴보함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고 흔히 보아왔다.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생과 존립, 진전과 확장을 위한 치열한 도전과 생명력 그 자체라고 여겨진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성장과 발전이 없다. 최근 들어 걷잡을 수 없는 이변의 소용돌이 속에 고난과 질곡, 파란과 충격의 여파가 만만치 않은 듯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난마같은 코로나19를 탓하고 투표로 나타난 민심의 향배만 안쓰러워 할 것인가. 앞으로 어쩌면 그보다 더 치명적이고 위협적인 최악의 딜레마에 휩쓸릴 수도 있음을 예단하고, 보다 지혜로운 대응과 만반의 조치, 유연하고 과단성 있는 변화의 길목에 나서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종전과 달라진 생활패턴과 새로운 의식의 지향 속에서 익숙한 듯 낯설게 움직이고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여, 차별화된 새로움과 확고한 비전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고목의 등걸에서도 새순이 돋아나듯이 경험과 시련을 통해 지혜가 자라고 내성이 길러진다. 진정한 변화는 전통의 배제가 아니라, 역사의 무늬가 응축되고 융화되는 그루터기 위에서 싹이 트는 창조적인 혁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