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당 현종이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것은/ 허심탄회하게 간언을 수용했기 때문이네/ 황금 상자를 길이 두고 거울로 삼았던들/ 행차가 어찌 서촉(西蜀)까지 이르렀겠나.’

고려시대의 문신이며 명문장가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 금함(金函)이다. 당나라 예종을 이어 즉위한 현종은 연호를 개원(開元)이라 고친 뒤에 요숭, 송경, 장구령과 같은 어질고 뛰어난 인재를 재상으로 등용하여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여파로 혼란에 빠진 국가를 안정시키고 3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끌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서 말하는 ‘개원의 치세(開元之治)이다. 개원 연간 동안 현종은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신하의 상소가 올라오면 그 가운데 긴요한 것을 골라 황금으로 장식한 상자 속에 넣어 두고 수시로 꺼내 읽으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즉위한 지 30년이 되어 연호를 천보(天寶)로 바꾼 뒤로는 양옥환(일명 양귀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국정을 게을리하기 시작하였다. 이 틈을 타서 이임보, 양국충과 같은 간신들이 국정을 농간하더니, 양귀비의 양자가 되어 현종의 총애를 독차지하던 절도사 안녹산이 난을 일으키니 장안은 순식간에 점령되었다. 목숨만 부지한 현종은 지금의 중국 성도(成都)인 서촉으로 피난하고 나라는 성당(盛唐)시대에서 기울기 시작한다.

사람은 자신의 실패와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성공하고 잘한 행위만을 자랑스러워하고 패배와 잘못은 숨기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발전을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성공을 자부하고 안주하는 데서 발전하기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고치는 데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고칠 것이며, 잘못이 고쳐지지 않는데 어떻게 나아질 수 있겠는가.

4·15 21대 국회의원 총선의 결과를 보면 보수 세력이라고 자칭하던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궤멸에 가까운 참패를 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넘겨 헌법개헌을 제외한 모든 입법 활동에 있어 일방적 추진이 가능해졌다. 이는 향후 국내의 입법 작용이나 대통령의 정치행위의 결과가 오로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귀결된다는 점이다. 2년 후 국가상황과 여당의 실정은 대선을 통해 국민이 평가할 것이다.

벌써부터 총선결과를 등에 업고 오만한 자들의 막말이 쏟아진다. 더불어시민당의 한 대표는 자신의 SNS에 ‘이젠 보안법 철폐도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촛불 시민은 힘 모아 여의도에서 이제 당신의 거취를 묻고 있다.’라고 적었다. 조국 전 장관 아들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로 비례대표에 당선된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18일 ‘한 줌도 안 되는 부패한 무리의 더러운 공작이 계속될 것’이라며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말했다. 현종이 서촉까지 피난하고 나라가 망한 역사적 사실이 새삼 떠오르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