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수업은 EBS 강사가, 월급은 학교 교사가”

온라인 개학이라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이 글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다시 숨을 쉬기 위해서는 다른 숨이 필요했다. 하지만 진실한 말의 힘 앞에 다른 숨을 찾을 수가 없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가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 (T.S 엘리엇 ‘황무지’)

시구처럼 2020년 4월은 필자가 지금까지 직접 경험한 4월 중 가장 잔인한 달이다. 멈추기 직전의 세계 경제 소식이 그렇고, 가택 연금 수준의 자택격리 중인 사람들의 소식도 그렇지만, 필자를 더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학생 없는 학교에 가득 핀 꽃 소식이다. 그 꽃들은 망부석처럼 색과 향을 잊어버렸다. 벌들도 흥을 잃었는지 빈 교실 앞에서 요란하기만 하다.

그런데 필자를 진짜 아프게 하는 것은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와 교사들이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아니 학생들에게 혼란만 주고 있다. 학교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교육부가 온라인 개학이라는 미봉책을 내놓으면서부터이다.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그런데 타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큰 부작용과 피해가 뒤따른다.

학교에는 이미 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교사 간 의견대립과 책임회피와 같은 학교 자율성을 상실한 이 나라 교무실 민낯이 그것이다. 그 결과는 공교육 불신 가중이다. 다음은 EBS 뉴스(‘한 주간 교육현장’ 2020. 01. 24.)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는데요.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학부모들은 교사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으며, 98%에 달하는 학부모가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킨다는 (…)”

이것이 바로 정부의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권고에도 학원들이 문을 닫을 수 없는 진짜 이유이다. 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교육부가 제시한 다음의 원격수업 유형이 과연 모두 같은 수준의 수업이라고 생각하는지? “① 실시간 쌍방향 수업, ②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 ③ 과제수행 중심 수업, ④ 기타 교육감 또는 학교장이 별도로 인정하는 수업” 필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이 네 가지가 같은 수업으로 인정되는지 정말 모르겠다.

“선생님, 저 과포자 됐어요. 그리고 제 주변에는 공포자가 정말 많아요.”

졸업생이 전해온 현 교육의 현실을 나타내는 신조어를 듣고 필자는 봄꽃보다 온몸이 더 붉어졌다. 과포자는 과제 포기자, 공포자는 공부 포기자다. 온라인 개학 이야기가 나온 이후에 이런 학생들이 훨씬 더 많이 늘었고, 자신은 공포자가 안 되기 위해서 학원을 간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학생이 과포자와 공포자가 되어야 할까? 더 이상 과제다 뭐다 해서 학생들을 괴롭히지 말자. 교과 진도를 나가지 않을 바에는 괜히 등교 개학 이후에 학생들을 잡도리하지 말고 차라리 온라인 개학 주간을 수행평가 주간으로 운영하자. 그러면 최소한 의미 없는 과제에 가위눌려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까지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댓글도 교사들의 노력을 인정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