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오동은 천년을 살아도 그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조선중기 문인인 상촌 선생 문집 야언(野言)에 기록된 시 구절이다.

매화는 이른 봄에 추위를 무릅쓰고 먼저 꽃을 피우고,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 퍼뜨린다.

국화는 늦가을에 첫 추위를 이기며 피고, 대나무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한다고 하여 이 네 가지 식물의 특유의 강점을 덕과 학식을 갖춘 전인(全人), 즉 군자(君子)에 비유하여 이른바 사군자로 불린다.

조선의 선비들은 송, 죽, 매를 겨울철의 세 벗이라 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라 불렀다. 그 중 매화를 으뜸으로 여겼으며 매화는 사귀(四貴)라 하여 꽃이 무성하지 않고 드문 것을 희(稀), 어린것보다 늙은 노목을 노(老), 살찐 것보다 야윈 것을 수(瘦), 활짝 핀 것 보다 꽃봉오리를 뇌(雷)라 하여 더 귀하게 여겼으며 망울부터 만개, 낙화까지 세 번을 봐야 한다고 했다. 꽃피는 시기나 장소, 색깔이나 그 모습에 따라서도 여러 별칭이 있다.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고 해서 화형(花兄), 엄동의 고난에 굴하지 않고 봄에 향기로운 꽃을 피워 고우(古友), 눈 속에 피는 꽃이라 하여 설중매(雪中梅) 등으로 불린다. 이렇듯 별칭이 많은 이유는 인간의 삶 속에 극복해야 할 아픔과 일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듯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겨울 추위를 뚫고 피어난 매화의 기개를 높이 평하여 이 같은 의미를 투영하려 했기 때문이다. 향기 또한 ‘귀로 듣는 향기’라 해서 고혹적이라 암향이라 일컬으며 암향부동(暗香浮動)이라 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섬세하게 느껴야 본래의 향기를 알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일제 강점기 때 개량된 매실나무가 아닌 토종 고매(古梅)는 전국에 대략 200여 그루가 있으나 대부분 노쇠하여 고사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매는 전국에서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순천 선암사 선암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탐매가(探梅家)들에 의해 호남5매, 산청3매, 경북2매로 불리는 고태미가 뛰어난 명매가 있으니, 호남오매로는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 담양 계당매, 전남대 대명매, 소록도 수양매를 이르는데 수양매는 태풍에 쓰러져 안타깝게 고사했다고 한다. 산청의 선비들이 심었다는 산청3매로는 산천재의 남명매, 단속사지의 정당매, 남사마을의 원정매가 있으며, 경북 2매로는 도산서원의 도산매, 하회마을의 서애매가 그것이다. 모두 단아하며 품격 높은 기개로 선비정신의 맑은 향기를 품고 있어 그 자태를 더해주고 있다.

지금 국민들은 전염병 전파에 따른 과도한 스트레스와 공포증, 사회활동 위축 등 ‘코로나블루(코로나우울증)’로 인한 감염증후군에 걸려있는 상황에서 4·15 총선 공천을 놓고 정당마다 꼼수와 궤변, 편법이 난무하는 ‘진흙탕싸움’은 국민들을 더 힘들고 분노케 한다. 매화가 만발한 계절이다. 권력과 물욕에 찌든 부류들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섭리에 따른 인생무상과 자연의 경외심을 노래하고 있는 매화 앞에서 비추어 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