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br /><br />시조시인<br /><br />
김병래

시조시인
 

‘지구는 북극점을 중심으로 한 원반이고. 원반의 끝은 남극 대륙으로 45m의 얼음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늘은 돔 모양이고 해와 달은 지구 표면에서 5000km 떨어진 지름 50km의 구(球)이며 이들이 공전함으로 낮과 밤이 생긴다. 해와 달을 제외한 행성이나 항성들은 인공조명일 뿐이고 중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도 날조된 음모라고 하고, 아폴로 우주선이나 달 착륙도 우주로켓과 우주정거장도 인정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불과 5세기 전이니 지구 평면설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나 할까.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있고 태양은 그 중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며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들은 모두 태양과 같은 종류의 항성이다’는 ‘무한우주론’을 주장한 브루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화형에 처해지기까지 했다.

세계에 산재한 온갖 종교와 전설과 신화가 말해주듯 인류는 곧잘 비합리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신념을 가져왔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게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서사로 엮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그것이 찬란한 문명을 낳은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끔찍한 살육과 전쟁의 구실이기도 했다. 세상이 하나의 정보망으로 연결되어 그런 신념들이 비과학적이고 서로 상충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이 민심이고 이념이다. 오히려 지독한 확증편향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같은 사안을 두고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바로 지금 우리의 정국이다. 단순한 의견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념이 다르고 목적이 다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철이 되면 좌우의 진영에선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고 감정과 불신의 골은 더 깊어진다. 중도충이라고 더 현명하거나 냉철한 것도 아니다. 자기주장이나 신념이 뚜렷한 부동층(不動層)이 아닌 부화뇌동하는 부동층(浮動層)이 대부분이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을 정치인들이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다 쓰는 경우가 많지만, 중우(衆愚)란 말도 있듯이 민심이란 믿을 게 못 되는 것도 현실이다. 포풀리즘이나 선전선동에 곧잘 휩쓸리는 게 민심이다. 히틀러에 열광한 것도 민심이고 러시아 볼셰비키를 밀고 간 것도 민심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도 민심이고,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망친 차베스나 마두로 같은 독재자들이 장기집권을 한 것도 그 나라 민심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26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민심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 편에서는 나라를 망치고 있는 정권의 심판을 부르짖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권의 사수를 위한 결사항전을 외친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국민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좌우된다는 것을 여러 나라의 경우에서 보았다. 우리나라 역시도 70여 년 쌓아온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민심의 향방이 과연 천심을 따를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