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5월, 멕시코시티.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한 나이 든 프로 레슬러의 은퇴식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멕시코는 프로 레슬링이 큰 유행이었는데 이번에 은퇴하는 선수를 보며 사람들은 감동과 벅찬 사랑을 느꼈습니다.

레슬러는 ‘마법사의 폭풍’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1975년 프로 레슬링에 입문해 항상 황금색 가면을 쓰고 경기해 인기가 최고였습니다. 화려한 분장 뿐 아니라 현란한 개인기는 관중을 압도했으며, 위기의 순간마다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3년 동안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준 ‘마법사의 폭풍’ 은 오십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은 현역 레슬러로 활동하기에는 체력과 기술이 한계에 도달했던 거지요. 그는 끝까지 자신을 아껴 준 팬들을 위해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마법사의 폭풍’이 링 위에 오르자 관중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로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했습니다. 링 한 가운데 선 마법사의 폭풍은 관중의 박수가 잦아들자 놀라운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23년 동안 한 번도 벗지 않았던 자신의 황금가면을 천천히 벗기 시작한 겁니다. 관중들은 그가 준비한 선물에 충격을 받고 숨을 죽였습니다. 마침내 얼굴을 드러낸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작은 가톨릭교회 신부 세르지오구티에레스입니다. 프로 레슬링을 하는 동안 저는 고아원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한동안 관중의 정적이 이어지더니 더욱더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세르지오는 23년 동안 가난한 신부라는 신분을 감춘 채 레슬링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3천여 명의 고아들을 돌봐 온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멈추어 생각해 보는 새벽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