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백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
서수백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해마다 연말이 되면 방송에서는 ‘올해의 키워드’를 정리해 한해를 되돌아보는 보도를 한다. 2020년은 동일 숫자가 이어지는 인상적인 해인 만큼 ‘올해의 키워드’도 연초부터 드러난다. 한국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과 코로나19의 사태가 2020년 희비(喜悲)의 대표 키워드가 될 것은 분명할 듯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를 긴장하게 하면서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그 파급력이 대단하다.

헬라어 ‘kor<1E53>n<0113>(κορ<03CE>νη)’에서 유래한 ‘코로나(corona)’는 ‘크라운(crown·왕관)’의 뜻이다. 바이러스의 모양이 ‘로마 시대의 머리 장식’과 비슷한 데서 지어졌다고 한다. 전파력이 이전의 사스나 메르스에 비해 현저히 높은 바이러스다. 신도 수가 수십만에 이르는 종교단체 ‘신천지’의 신도가 감염됨에 따라 코로나19의 전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이제는 이것을 인력으로 막는 데 한계를 느끼기까지 한다. 감염 바이러스에 대한 안일함이 지금의 사태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교육계에서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졸업식과 입학식 등 정례 행사들을 모두 취소하고 개학 일정도 2주~4주 간 연기하였다. 민생경제는 크게 위축되었고 나날이 늘어나는 감염 확진자들로 의료계는 사상 최대의 혼란과 과로를 겪고 있다. 육아 문제나 기업의 업무 차질에 따른 사회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마스크 품귀에 따른 가격 폭등과 부당폭리, 매점매석 등은 ‘나만’, ‘나 먼저’ 살겠다는 이기심을 부추겼고 마스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에는 취약성만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필자도 이른 아침부터 3시간 반을 기다려 정부에서 공급하는 마스크를 겨우 살 수 있었다. 밀집된 장소를 피하라고 하면서 마스크를 사려고 몇 시간을 다닥다닥 붙어 늘어선 긴 줄은 너무나 아이러니하고 웃프지 않은가.

사회 한편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성금과 기부가 이어지고 있으나 또 한편에서는 마스크 한 장 나누는 것조차 꺼려하며 위기의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고까지 한다. 무분별한 혐오와 분노 표출, 별별 가짜 뉴스는 더 큰 공포감을 확산하면서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거짓 감염 확진 신고로 공공기관에 혼란을 주는 행위나 감염 확진자가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문 손잡이에 침을 뱉으며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옮기는 영상 보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간에 대한 ‘성선설’과 ‘성악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환경이 선한 인간을 악하게 하는 것인가, 환경에서 인간의 악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인가.

그래도 인간의 본성은 선(善)일 것이다. 위기 때마다 공멸(共滅)의 바이러스와 공생(共生)의 바이러스는 공존하였다. 그리고 승리는 언제나 공생의 바이러스였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바이러스에 대한 분별력으로 차단과 확산의 의지가 절실하다. 코로나19가 우리 안에 또 하나의 바이러스를 만들고 그것이 퍼진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공생의 의지를 단단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