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전 석탑 뒤로 보이는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이 석굴은 군위군 부계면 남산 4길 24에 위치해 있다.

올 겨울은 큰 추위 없이 그럭저럭 보냈다. 하지만 끄트머리에서 만난 복병은 위협적으로 우리를 흔들고 있다. 저만치서 창백한 모습으로 주춤거리는 봄을 위해 전원의 삼월은 어김없이 분주하다.

텃밭 한쪽에는 상추며 파가 얼어붙었던 계절을 견디고 용케도 살아남았다. 여린 잎채소의 겨울나기처럼 모두가 건강하게 기지개를 켰으면 좋겠다. 긴 겨울이 때가 되면 물러나듯 이 어려움도 머지않아 지나가리라.

불안함 속에서도 마음의 근력이 생겨 제법 초연해져 온다. 제2 석굴암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팔공산 계곡, 천연 절벽 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은 7세기경에 조성 되었다. 경주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보다 1세기 정도 앞서 만들어졌지만 뒤늦게 발견되어 제2 석굴암으로 불린다.

신라 19대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수도전법을 하던 곳이라 ‘아도굴’이라고도 하며, 원효대사가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여 해동 제일의 석굴사원으로서 신라 불교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본존불 아미타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석굴은 우연히 마을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 주민들의 치성터로 쓰이다, 1962년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제 109호로 지정되었다.

석굴암에 밀린 두 번째 석굴사원이라는 이미지때문일까. 큰 기대감 없이 들어섰는데 안온한 느낌의 절 풍경이 좋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지나자 담장너머로 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나무들의 그림자가 담장을 지키고, 절벽의 석굴로 인해 일촌의 역사를 가진 전각조차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불이문을 지나듯 천천히 다리를 건너는 나를 석조비로자나 불자상이 맞은편 마당에서 지켜보고 있다.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어수선하고 삿된 마음 계곡에 흘려보내면 잠시지만 극락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 혼란스럽던 사바의 세계는 더 이상 계곡을 건너지 못한다.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전각과 나무들은 맑고 건강하다.

비질 자국이 선명한 마당이 나를 비로전으로 이끌고, 정갈한 마당 위로는 커다란 목련나무 가지가 꽃눈을 밀어 올리느라 정신이 없다. 마당 한쪽에선 특이하게 생긴 모전석탑이 홀로 봄볕에 빛나고, 그 주변을 마스크 쓴 사람들이 느릿느릿 시간을 즐긴다. 한 마리의 달팽이처럼 봄은 그렇게 어김없이 오고 있었다.

화강암 판석으로 만들어진 널찍한 단층기단 위의 4m 높이 모전 석탑은 시간의 깊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온 크고 작은 상흔들을 이끼 옷으로 감춘, 눈빛 진한 탑이 아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이만큼의 연륜이 느껴지지 않는 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같은 계통으로, 삼존상과 비슷한 시기인 7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을 거라 추정하지만 크게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절벽 동굴에 봉안된 아미타여래삼존불과 모전 석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수천 년을 함께 해 왔으리라. 훼손을 우려하여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는 삼존불, 나는 지척의 거리에서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둘 다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어둠을 안고 있는 동굴 속 삼존불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 때문일까. 과거와 현재, 없음과 있음, 묵직함과 가벼움 같은 사유의 공존성이 보인다.

목련나무 그늘에 서서 오랫동안 삼존불을 바라본다. 모전석탑은 햇살 속에서 더없이 명랑하고 굴속의 삼존불은 일심으로 바깥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밝음 뒤에 가려진 어둠, 그 묵직한 세계가 우리를 지탱시켜 주는 힘인지 모른다.

문득 빛 읽기의 대가인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랄프 깁슨이 떠오른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 어둠이 있어 밝음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시선은 밝은 쪽으로 쏠리지만 상대적인 어둠은 마음으로 응시할 수밖에 없다. 그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서 아미타삼존불이 내 안에 들어왔다 또 다시 멀어진다.

한결 마음이 차분하다. 절을 빠져나오는데 노점상들이 각종 약재와 채소, 과일 들을 풀어놓고 행인을 기다린다. 하얀 마스크에 가려진 그을린 얼굴, 삶은 때때로 별 것 아닌 모습으로 우리를 싸하게 만든다. 사과를 산 손님이 상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사고 보니 비싼 것 같다며 오천 원을 돌려달라는 요구였다. 근처에 세워둔 승용차의 엔진소리가 쓸쓸하게 쿨럭인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바이러스의 여파로 여유를 잃어가는 사람들, 빗나간 ‘사회적 거리두기’다. 조금 전까지 얼굴을 맞대고 덤까지 주고받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다. 값으로 셈할 수 없는 것을 그들은 놓치고 있다. 사회가 힘들고 어수선할수록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심리는 본능일지 모른다.

어쩌면 저 손님도 비로전이나 아미타삼존불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나오지는 않았을까. 문득 드는 생각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이나 기도만큼 부끄러운 게 있을까. 절을 나서기가 무섭게 우리는 형이하학적으로 채워진 현실과 맞닥뜨려야 하고, 삶은 우리를 자주 시험에 빠지게 한다. 행여 우리는 이상과 현실을 기도로 오가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제와 오늘이, 지난해와 올해가 조금도 성숙되지 않은 채 절집을 찾아 다닌지도 모르겠다. 봄볕이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