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하버드대학 샌델(M. Sandel) 교수는 그의 저서 ‘정의(正義)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공리주의나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공동체주의적 정의’이다. 정의로운 공동체 건설에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는 물론이고,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국민들도 명심해야 할 관점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정의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가? 문재인 정부의 정의는 진영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선과 악의 이분법은 나만의 정의, 즉 독선(獨善)에 빠지게 한다. 정치적 경쟁자를 적폐청산의 대상자로 인식함으로써 갈등을 부추기고 공동체를 황폐화시킨다. 공동체 건설을 위한 공동선의 추구가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하는 독선을 정의라고 강변하고 있다. 건전한 공동체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청와대에 방마다 걸려있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액자는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불의를 감추기 위한 장식품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의 30년 친구가 당선한 울산시장 선거에 청와대가 개입한 의혹으로 전·현직 비서관 등 13명이 무더기로 기소되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도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은 “편의적 정의가 아니라면 대통령은 직접 입장을 밝힐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또한 한변 소속 변호사들은 “대통령의 울산선거 개입이 확인되면 탄핵 사유”라고 했으며, 심지어 진보진영인 민변 소속 권경애 변호사도 “명백한 대통령 탄핵사유이며 형사처벌 사안”임을 지적하였다. 진영에 관계없이 모두가 정의를 짓밟고 있는 무법 정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의를 수호해야 할 정의부(법무부)장관 추미애의 행태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좌천시켜 인사 학살하더니, 무엇이 두려운지 국회가 요구한 검찰의 공소장 공개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공소장이 언론에 공개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번에는 또 다시 수사검사와 기소검사의 분리를 기도하고 있다. 추 장관의 행태는 청와대와 여당의 범죄피의자들에 대한 수사방해와 기소방해를 의심케 한다. 이에 대해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전 부장검사는 “이것은 형사사법 정의가 아니라 엿장수 형사사법”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를 수호’해야 할 정의부장관이 ‘정권의 수호’에 혈안이니 나라꼴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이다.

불의를 합리화하여 정의로 둔갑시키고, 검찰 수사에 개입하여 수사를 방해하면서도 민주적 통제라고 강변하는 철면피들은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 나와 내 편밖에 모르는 정치꾼들의 오만과 독선은 ‘정의를 요구한 국민의 엄중한 심판’으로 결국 파멸했다는 역사의 교훈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