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 속도가 빠르고 치명적인 전염병을 역병(疫病)이라 한다. 이른바 대유행병이다.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역병이 발생하면 역신(疫神)이 노해 벌을 내린 것으로 여겨 주술이나 기도를 통해 병의 퇴치를 소원했다.

세균이 발견되고 역병의 병원이 옳게 알려진 것은 겨우 19세 후반의 일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역병이 돌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흑사병이 창궐했던 중세 유럽은 전염병으로 수천만이 목숨을 잃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조선왕조동안 역병이라 하여 크게 전염병이 번진 사례만 줄잡아 79차례 된다고 했다. 그로인해 목숨을 잃은 백성이 천만명을 넘었다하니 질병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적이다.

1821년 순조 때다. 실록에 의하면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전염병이 우리나라에 닥치면서 무차별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심한 기침과 설사를 동반한 괴질에 한번 걸리면 양반, 평민 가릴 것 없이 열흘도 못가 목숨을 잃었다. 죽은 사람의 수가 10만을 넘었다니 원인을 몰랐던 당시로서는 하늘이 천벌을 내렸다고 믿을 법했다.

나라에 괴질이 돌면 임금이 나서 몸을 단정히 해 제사를 올리고 먹을 것을 내준다. 감옥에 갇힌 죄수도 풀어 선정을 통해 괴질의 창궐이 가라앉길 기원했다. 괴질을 붙들어 맬 묘책이 없는 왕으로서는 선정으로 흉흉한 민심을 달래려 온갖 정성을 다했던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산일로다. 정부의 뒷북대책이 또 비판대에 올랐다. “초기대응 실패” 등 지금이라도 사후약방문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진다. 이 와중에 대통령의 파안대소까지 구설수에 올랐으니 국민 눈에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내놓는 당국의 사후약방문이 이번만은 제발 없었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