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닌 드보르작(1841∼1904) <下>

드보르작 부부.
드보르작은 그의 나이 51세인 1892년에 뉴욕의 내셔널 음악원 원장직을 수락하여 미국으로 향하게 되는데, 약 2년 반 동안 미국에 머물며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비롯해 현악 4중주 12번 ‘아메리카’, 첼로 협주곡 B단조 등 그 생애 최고의 작품들을 짧은 시기에 완성하게 된다. 드보르작이 세계 문화의 용광로라 할 수 있는 미국에 간 것은 그의 작곡 활동에 새로운 국면을 제시한 것이다.

당시 미국의 음악은 정체성이 없었다. 재즈가 존재하긴 했으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의해 이뤄지는 변방의 음악에 불과했다. 드보르작은 특히 인디언 음악과 흑인들의 영가에 주로 주목했으며 아일랜드나 이탈리아 등 다른 서구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의 음악은 음악적으로 많은 작곡동기를 줬을 것이다. 드보르작은 “미국의 미래 음악은 흑인 선율에 기초해서 만들어져야 하며 이것이 미국에 세워진 진지하고 근원적인 작곡의 기초가 돼야 한다”라고 언급하는 등 한참 태동하고 있는 미국 음악의 앞날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가장 많이 접하면서도 클래식 곡으로 인지를 하지 못하는 곡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 곡에는 당시 미국을 구성하던 다양한 음악의 원천들이 녹아들어 있다. 드보르작은 기차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교향곡 ‘넬라호제베스’에는 드보르작이 9살이 되던 1850년경부터 역이 생기고 기차가 다니기 시작했는데 매일 기차역에 가서 증기기관을 관찰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1악장의 느린 서주부에서 이어지는 ‘알레그로 몰토’의 빠른 부분에서부터 기차가 서서히 출발하는 듯한 묘사와 관악기로 이어지는 기차의 경적 소리를 느낄 수 있으며 1악장의 제 2주제는 흑인 영가 ‘Swing low, sweet chariot’와 매우 유사하다. 2악장의 유명한 잉글리쉬 혼으로 시작되는 느리고 아름다운 선율은 그의 제자 윌리암 피셔에 의해 ‘꿈속의 고향’으로 가사가 붙어 불려지는데 보통 사람들은 이 곡이 교향곡의 2악장임을 모르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3악장은 인디언 춤곡의 리듬을 가져왔다고 보여지는데 리듬의 구성이 이국적이며 이전의 스케르초 악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리듬의 메커니즘이 보인다. 4악장의 선율은 너무나 유명한 선율이며 주로 응원가로 자주 쓰인다. 영화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의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제곡과도 비슷한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은 파퓰러한 멜로디 라인이 있다.

드보르작의 명곡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첼로 협주곡 B단조’를 꼽을 수 있는데 첼로 연주자들에게는 오케스트라와 같이 협연할 수 있는 곡이 그리 많지 않다. 그 중에서도 엘가, 랄로와 더불어 가장 많이 연주되는 첼로 협주곡 중의 하나이며 첼로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원래 이 곡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며 그 영감이 떠올랐다고 한다. 드보르작은 나이아가라 폭포의 웅장한 모습을 보며 “이건 B단조의 교향곡 이 되겠군!”이라고 감탄했다지만, 이 곡은 교향곡이 아닌 첼로 협주곡으로 작곡된다. 브람스는 후에 이곡을 듣고 “만약 내가 이곡을 좀 더 일찍 들었더라면 이 같은 첼로협주곡을 써봤을 텐데….”라고 한탄했으며 브람스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악보 서재에 드보르작의 악보가 가장 많았다고 전해진다.

드보르작은 미국에 머물던 당시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다. 가족 중심의 지극히 가정적인 생활을 했으며 사교계 출입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향이 그리울 때는 뉴욕의 항구나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을 즐기는 등 그의 음악적 업적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가장이자 소시민이었다.

드보르작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보헤미아 최초의 작곡가였다. 당시 대립하고 있던 바그너의 혁신적인 화성법과 브람스의 전통적인 음악 전체의 구성과 주제 전개를 융합시켰으며, 여기에 보헤미아 특유의 민속음악과 미국이 품고 있던 다양한 음악적인 내용을 모두 받아들인 진정한 음악의 보헤미안이었다.

/포항예술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