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암 대웅전과 삼층석탑 너머로 보이는 설산. 도성암은 대구시 달성군 유가읍 도성길 180에 위치해 있다.

햇살을 동무삼아 도성암까지 걷기로 했다. 굽이굽이 비슬산을 감고 오르는 콘크리트길을 한 시간 가량 걸으면 비슬산 최고의 참선도량, ‘천인득도지(千人得道地)’로 불리는 도성암이 나온다. 저마다 다른 수피의 나목들이 인사를 건네 오는데 나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사진을 찍고 눈을 맞춘다. 청량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행복한 산행이다.

남편은 목적지를 향해 성큼성큼 앞서 걷고 나는 겨울 산의 매력에 빠져 엉뚱한 짓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한다. 그런 나를 재촉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남편은 한 번씩 뒤돌아보고 기다려 준다.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며 다른 생각에 잠겨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잡목 숲이 끝나자 잘 생긴 소나무 숲이 한참 이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확 트인 골짜기 건너편, 해발 700미터 고지에 청기와가 보인다. 도성암은 선산 도리사, 팔공산 성전암과 함께 경북 3대 참선수도처 중 하나로 신라 혜공왕 때 도성(道成) 스님이 창건하였다.

삼국유사에는 도성과 관기의 득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라 때 포산(비슬산)에 도성과 관기라는 두 성사가 있었다. 도성은 북쪽 굴, 관기는 남쪽 고개 암자에서 살며 구름을 헤치고 달을 노래하며 10여 리 거리를 서로 왕래하였다. 도성이 관기를 부르려고 하면 산속의 나무가 모두 남쪽으로 굽어 영접하는 것처럼 보여 이를 보고 관기는 도성에게 달려갔으며, 관기가 도성을 맞이하고자 하면 나무가 북쪽으로 구부러져 도성이 관기에게로 달려갔다.

어느 날, 도성이 굴 뒤 큰 바위에서 좌선을 하던 중 바위를 뚫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간 곳을 알 수가 없다. 얼마 뒤 관기도 도성을 따라 세상을 떠났는데 그 역시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두 성사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살던 곳에 도성암과 관기봉이라 이름 붙였다. 도성이 도를 통하여 바위를 뚫고 사라진 바위를 도성암(道成巖) 혹은 도통바위(道通巖)라 부르고 그 아래에 도성암(道成庵)을 지은 것이다.

대나무로 만든 소박한 정낭이 암자의 산문을 대신한다. 활짝 열려 있지만 수행도량이라 발소리를 낮춘다. 스님의 털신 하나가 단정히 놓여 있는 도성선원, 유리문에는 오후의 햇살이 그려놓은 나뭇가지들이 황홀하게 일렁인다. 청기와로 치장한 대웅전이나 푸른 소나무 숲, 예사롭지 않게 솟아 있는 도통바위조차 잊은 채 홀린 듯 커다란 느티나무를 바라본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부부인지 연인인지 모를 남녀가 서 있다.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 때문에 얼마만큼의 거리를 둔 그들의 풍경은 검은 실루엣이 되어 그림처럼 아름답다. 마당 한 가운데 서 있는 삼층 석탑이 무색하리만치 다가가도 미동을 않는다. 간절한 몸짓이나 우수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옹이진 싸늘함이 감도는 그들의 침묵을 나무는 느긋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냉랭함을 피해 남편과 나는 조용히 대웅전 법당으로 향한다.

뜰아래에는 잔설이 남아 있지만 비닐 방한복으로 무장을 한 법당 안은 아늑하다. 최고의 기도처에서 특별한 기도를 하고 싶은데 난감하다. 적당한 기도가 떠오르질 않는다. 마당 끝에 서 있는 느티나무만 아른거리다 얼떨결에 조금 전에 본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말았다. 행여 서로의 무게가 버겁고 힘겹더라도 모진 말로 상처주지 않기를,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는 말로 부디 위안 삼기를.

법당을 나오자 그들은 떠나고 없다. 대신 중년 남자 하나 나무의자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고독은 둘 사이에 흐르는 냉랭함보다 더 무겁고 안쓰럽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몸짓과도 같은 아픔이 느껴진다. 그것이 비록 잠깐의 휴식이라 할지라도. 곁에 있는 느티나무의 자태는 정령이 깃든 것처럼 신령스럽다.

아무도 없는 느티나무 아래 남편과 나란히 선다. 미세먼지로 산 아래는 뿌연 허공에 잠겨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도성대사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250살의 느티나무가 벼랑 끝을 지킨다.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 본다. 섬세한 가지들이 참선하듯 허공을 향해 저마다 길을 내고 있다. 맑고 청아한 기운들이 뻗어가는 길을 따라 아름다운 생명의 언어들이 물결친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시름에 젖어 홀로 찾아와 머물다 가도 좋을 자리, 눈길이 향하지 않아도 무언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위로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조용히 서쪽을 응시하는 남편, 문득 그의 쳐진 어깨를 보고 말았다. 허무함으로 구멍 난 내 시간에 집착하느라 상대를 살피지 못했다. 언제나 햇살처럼 은은하고 든든한 존재로만 여겨왔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는 느티나무 같은 존재여야만 했다. 지치고 쓰러져서는 안 될 무게로 버티는 나무. 그가 가진 긍정성이 아픔과 시름 속에서도 사랑하며 살도록 이끌었으리라. 가끔은 모든 것 내려놓고 고독 속에 남겨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숙연하다. 눈먼 나를 위해 기도한다. 나보다 남을 보살피는 마음으로 삶을 채색하고 싶다. 평온한 저녁 인사처럼. 암자를 나서는데 비슬산 정상에 하얗게 쌓인 눈이 보인다. 잔설 같은 낮달 하나 멀찌감치 서성인다. 낮달을 처음 본다는 남편의 말이 애잔하게 따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