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체 진솔 산림기술사사무소 대표

며칠 전, 포항에서 대구로 향하던 중 서포항 나들목 근처를 지나다가 저절로 눈길이 머무는 경험을 했다. 직업은 속일 수 없는 법. 내 눈에는 제일 먼저 산(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지역은 소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임지(林地)다. 운전 중 눈길이 머문 이유가 있다. 벌겋게 죽은 소나무가 보였기 때문이다. 병든 소나무를 보는 순간 가시에 찔린 듯 마음이 따끔했다. 소나무숲이 주는 푸르름은 간데없고 벌겋게 변한 소나무들이 눈에 밟힌다. 한두 그루가 아니었다. 이미 많은 소나무가 벌겋게 변했다. 산이 일터인 필자는 이런 장면을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 더 가슴이 아프다.

벌겋게 서 있는 소나무는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이다. 재선충(材線蟲)병에 감염된 소나무는 서 있는 채로 말라버린다. 이 병에 걸린 소나무는 고사할 확률이 100%에 가깝다. 재선충은 소나무의 양분과 수분을 빼앗아 간다. 인위적으로 소나무에 영양제를 투여하지 않는 이상 재선충에게 소나무의 영양분을 대부분 뺏겨 말라 죽는 것이다. 재선충은 스스로 다른 나무로 이동하지 못한다. 솔수염하늘소와 같은 매개충을 통해 이동한다. 솔수염하늘소는 2~3cm 크기의 작은 벌레다. 산림청에서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위하여 매년 예산을 배정한다. 솔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의 서식처를 없애는 일이다. 매개충의 서식처가 되는 고사목에 대해서 훈증 및 매몰 파쇄 작업을 하는 것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이다.

필자는 2014년도에 포항 나들목 인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의 설계용역을 한 적이 있었다. 벌써 6년 전 일이다. 그 당시에도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가 많았었다. 그 이후 매년 꾸준히 산림청과 포항시에서 방제작업을 해왔다. 다행히 죽어가는 소나무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2020년 초, 6년 전 못지않게 다시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익숙한 노랫말이다. 애국가이다. 식전행사로 국민의례를 할 때 주로 듣는다. 70~80년대 필자의 학창 시절에는 거의 매일 들었다. 애국심을 고취시켜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국민적으로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국기 강하식이라는 행사도 매일 거행했는데 관공서와 학교에 게양한 태극기를 내릴 때 애국가가 전국에서 흘러나왔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국민은 누구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태극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쉽게 듣지 못하는 애국가다. 그래도 애국가 1절은 많이 들어 볼 기회를 접하지만 4절까지 전부를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국가 2절 가사에 소나무가 등장한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소나무는 다른 수종에 비하여 성장이 느린 편이지만 수명이 길다. 자연히 장수의 상징이다. 불로장수라는 꽃말이 붙였다. 소나무 모양은 다양하다. 곧게 자라기도 하고 구불구불하게 자라기도 한다. 쭉 곧게 자란 소나무는 전통 건축물 목재로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백 년 이상 모진 비바람을 견디면서 성장한 소나무가 불타버린 남대문 축조에 쓰였다.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소나무는 조경수로 으뜸이다. 척박한 토질에서도 자란다. 바위산에도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소나무는 쓸모없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곧게 자라면 건축 자재로, 못생겨도 그 나름대로 조경수로, 아니면 생활에 필요한 땔감으로, 여러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

지금은 우리나라 어디든 소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상이변이 일어나 우리나라에서 소나무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2100년에는 백두산 같은 고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으로 변할지 모른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는 임업인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의 작은 관심만 가진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의 애환과 함께해 온 소나무를 지켜야 한다. 다시 반만년 역사를 이어가도록 온 국민의 작은 관심이 절실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