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이경재의 경북문학기행

경북 출신 작가들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발전 과정에서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그들 시와 소설에 대한 면밀한 탐구와 문학적 배경이 된 도시에 관한 연구는 충분하지 못했다. 중견 문학평론가 이경재가 본지 연재기사를 통해 경북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라 할 수 있는 현진건, 이상화, 이육사, 조지훈, 한흑구, 김동리, 박목월, 권정생, 김주영, 이문열, 김원일, 김원우, 성석제, 김연수 등의 문학적 궤적을 따라가며 빛나는 ‘경북문학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작가 이문열은…

1948년 출생. 1977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고, 이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젊은 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변경’ 등의 문제작을 연이어 출간하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오늘의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호암예술상 수상자. 장려한 문장과 역사와 유학(儒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작가로도 이름 높다.

◇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다시 읽다

아일랜드의 문인 오스카 와일드(1854~ 1900)는 “예술이 삶을 모방한다기보다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은 유미주의자의 궤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곰곰이 되씹어보면 적지 않은 진실을 담고 있다. 소위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조형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처음 출판되었을 때부터 많은 이들에 의해 ‘젊음의 문학’ 혹은 ‘젊음의 소설’로 일컬어졌던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민음사, 1981) 역시도 한동안 예술을 사랑하고 참된 삶의 가치를 고민하는 청춘들에게는 따라 배워야만 할 젊음의 필독서로 인식되었다. 시라고 보아도 무리 없는 유려한 문체 속에 담겨진 그 진지하고 현학적인 분위기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매혹적인 대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설령 ‘젊은 날의 초상’에 바친 이러한 찬사가 과장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결코 이 말을 부정할 수가 없다. 처음 문학에 뜻을 두었던 여드름 투성이의 10대 소년이었던 나에게는 예술을 지망하는 청년의 진정성을 표상하는 작품으로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이 ‘젊은 날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문청(문학청년)으로 이 책을 처음 읽은 후에, 나의 젊음도 ‘젊은 날의 초상’에 나오는 영훈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얼마나 많은 다짐을 했던가? 특히나 폭설이 내리는 창수령을 넘어 동해바다를 향해 가던 영훈의 여로는 문청이라면 의당 다녀와야만 하는 일종의 순례길로 내게는 깊이 각인되었다.

그리해서 친구 몇 명과 함께 학기를 마치자마자 떠나서 조우했던 창수령은 내 영혼의 어딘가에서 지금도 폭설을 맞으며 의연하게 서 있다. 이제 그 현학적 분위기와 유려한 미문의 한계도 짚어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눈 내린 창수령을 넘어 푸른 대진 바닷가로 향하는 영훈의 모습은 내 가슴을 뜨겁게 한다.

성장소설인 ‘젊은 날의 초상’은 중편 ‘하구’, ‘기쁜 우리 젊은 날’, ‘그해 겨울’로 이루어진 연작장편소설이다. 이 세 편은 소년기를 벗어나 청년기에 들어서는 삼년 여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하구’가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형이 사업을 하는 강진에 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합격하기까지의 이야기라면, ‘기쁜 우리 젊은 날’은 대학에 입학한 후에 문학과 술과 사랑과 번민으로 시끌벅적한 대학시절의 이야기이다. 시기상 마지막에 해당하는 ‘그해 겨울’은 영훈이 대학을 그만두고 참된 가치를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날의 초상’에서 펼쳐진 3년간의 시간은 이문열의 젊은 시절 약력(검정고시와 서울사대 입학, 그리고 뒤이은 낙향)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하구’·‘기쁜 우리 젊은 날’·‘그해 겨울’

세 중편으로 이뤄진 연작장편소설

예술을 사랑하고 참된 가치 고민하는

80년대 청춘들에 필독서로 읽혀

주인공의 허드레일꾼 생활 배경은

작가의 형이 운영하던 고향 ‘영양’

목숨 걸며 걷던 폭설의 창수령부터

대진 바다까지 200리 순례길은 ‘영덕’

세 편의 중편 중에서 경북을 주요한 무대로 한 것은 ‘그해 겨울’이다. 영훈은 “애초부터 잘못 지어진 옷”과 같았던 대학생활이 가져온 피로와 혼란, 그리고 가까운 친구의 죽음으로 자극된 허무와 절망에 내몰려 경상북도 어느 산골의 술집 겸 여관에서 방우(허드레일꾼)로 지낸다. 영훈이 방우 생활을 하던 경북의 산골은 이문열 작가의 형이 운영하던 곳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작가는 ‘귀향을 위한 만가’(작가가 쓴 작가의 고향(조선일보사, 1987)에서 “내 나이 스무 살 때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역시 여기저기 다니며 고생하시던 큰형님이 고향 장터 거리에다 여관 겸 술집을 여시고 계셨는데, 서울사대를 첫 번째 휴학하고 떠돌던 내가 그리로 돌아간 것이다. 그 여관 겸 술집에 대해서 ‘그해 겨울’에 비교적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영훈은 나름대로 만족함을 느끼며 방우 생활을 하지만, 이내 그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길 위에 선다. 참된 가치를 스스로 찾기 위해서 그리고 모종의 결단을 요구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따르기 위해서 대진(경북 영덕군)의 바닷가를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이 여로의 클라이맥스는 700미터 높이의 창수령(蒼水嶺)이다. 수직의 땅 끝에 위치한 창수령에서 영훈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감각하고 그에 헌신할 자신의 삶을 예감한다. 이 때 묘사되는 창수령의 모습은 한 편의 시라고 보아도 모자람이 없으며, 한국문학사가 가닿은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 중의 하나이다. 이 대목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영훈이 넘었던 창수령은 영덕군과 영양군을 연결하는 해발 700m의 고갯길로서, 고대부터 영양, 봉화 등 내륙 주민이 영덕 영해시장과 동해안을 연결해주는 핵심적인 길이었다. 경북 영양군 석보면이 고향인 이문열에게 창수령은 무척이나 익숙한 곳이었으며, 그러한 육화된 체험이 있었기에 수십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감동을 주는 명문장을 낳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때로 목숨을 걸기도 하며 다양한 공간을 횡단하여 바닷가에 도달했을 때, 바다는 영훈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 허망한 침묵 앞에서, 수평의 땅 끝에 이른 영훈은 “신도 구원하기를 단념하고 떠나버린 우리”를 구원할 그 무엇도 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역설적으로 그 완전한 침묵은 영훈에게 삶의 의지를 가져다 주고, 끝내는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갈 힘을 준다.

허무와 절망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이 새로운 삶에 연결된다는 이 역설적인 인식은 실존이 본질에 선행(先行)하며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주어진다는, 그렇기에 백지와도 같은 삶을 채워나가는 것은 무거운 짐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선물일 수도 있다는 실존주의에 맞닿아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갑작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준비를 거쳐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바닷가로 오는 여정에서 만난 친척 누나는 유부남과의 사랑으로 인생의 쓴 잔을 마신 적이 있는데, 고뇌하는 영훈에게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라는 말을 이미 해주었던 것이다.

 

‘아아, 나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았다. 창수령을 넘는 동안의 세 시간을 나는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세계의 어떤 지방 어느 봉우리에서도 나는 지금의 감동을 다시 느끼지는 못하리라.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완성된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을 나는 바로 거기서 보았다. 오, 아름다워서 위대하고 아름다워서 숭고하고 아름다워서 신성하던 그 모든 것들…’.

영훈의 여로에는 배신한 과거의 동지를 죽이기 위해 대진으로 가는 칼갈이 사내가 함께 했다. “나는 죽이러 가고 자넨 죽으러 가는 것”이라는 칼갈이 사내의 말처럼, 영훈과 칼갈이 사내는 일종의 거울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영훈이 바다에서 미래를 채워갈 삶의 의미를 구하고자 했다면, 칼갈이 사내는 바다에서 과거를 구원할 삶의 해원(解寃)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훈이 그 의미를 구할 수 없었던 것처럼, 칼갈이 사내 역시 해원에 실패한다. 그렇기에 둘은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약병(감상)과 칼(망집)을 함께 바다에 던진다. 완전한 무(無)의 철저한 깨달음을 통해 가능성으로 충만한 현재는 둘 앞에 새롭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해 겨울’을 가득 배우는 색채의 이미지도 참으로 아름답다. 창수령을 넘을 때는 삼십년래의 폭설이 내려서 작품이 온통 순백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이 순백의 색채는 고뇌하는 영훈의 배경색으로는 참으로 적당하다. 이외에도 불과 물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서, 이 작품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영훈은 방우로 지낼 때 남포동과 장작불의 빨간 불빛을 보며 큰 영혼의 위로를 받는다. 대진 앞바다의 푸른 빛깔도 생명이라는 절대의 가치를 환기하기에 모자라지 않다. 이러한 불과 물의 이미지는 시련과 정화, 그리고 재생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성장소설로서의 ‘젊은 날의 초상’이 지닌 주제의식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학창 시절부터 여러 번 읽어온 작품이지만, 이번에 읽으며 새롭게 눈에 띈 사람들과 공간이 있다. 그것은 처음 본 영훈에게 흔쾌히 밥과 술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집이다. 길에서 만나는 “행인은 모두가 나의 좋은 길동무”이고, 잠자리는 밤늦도록 불이 켜진 채 두런거리는 방이나 시골 동장의 집이나 혹은 동방(洞房)이나 4H회관에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심지어 영훈은 자신을 검문한 전투경찰과 한 패가 되어 술추렴을 하고, 전투경찰의 하숙집에서 아침과 해장술까지 대접받을 정도이다.

이 따뜻한 마음의 장삼이사들로 인해 영훈의 여로는 속까지 훤히 비치는 고향길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훈훈하고 편안하다. 이들이야말로 200리에 가까운 영훈의 여로를 채우는 진짜 주인공들이며, 지식으로 가득찬 “창백한 폐병쟁이”보다도 더욱 통렬하게 영훈의 지적 허영을 조소하는 거리의 성자(聖者)들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창수령에는 왕복 2차선으로 잘 포장된 지방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그 밑으로는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강산은 이토록 빠르게 변할지라도, 그곳의 주인인 성자들의 모습만은 그대로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문학평론가 이경재

 

연재기사의 필자는…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난 이경재는 서울대학교에서 학부와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숭실대학교 국문과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문학과 공간의 연관성 탐구’를 지속하고 있는 그는 ‘단독성의 박물관’ ‘끝에서 바라본 문학의 미래’ ‘한국 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 등의 책을 썼으며, 제29회 김환태평론문학상 수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