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구석구석
철길숲과 불의정원

낮 최고기온이 13℃까지 오르며 대체로 포근했던 지난 26일 시민들이 포항 철길숲을 거닐며 산책을 하고 있다.
낮 최고기온이 13℃까지 오르며 대체로 포근했던 지난 26일 시민들이 포항 철길숲을 거닐며 산책을 하고 있다.

“100년 동안 포항 도심을 가로막았던 낡은 철길이, 이제는 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도심 속 자연 치유의 숲으로 거듭났죠”

폐철도 부지를 숲으로 조성해 만든 포항 철길숲(포레일 forest rail)이 답답한 도시공간에서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

포항시가 폐철도 주위에 꽃과 나무를 심으면서 관리를 하기 시작했고, 폐철도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소통·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철길숲은 포항시 남구 효자교회∼북구 옛 포항역(서산터널)을 잇는 4.3㎞(1시간30분 소요 예상) 구간이다. 이 도심 공원은 어울누리길(0.7㎞), 활력의 길(1㎞), 여유가 있는 띠앗길(1.2㎞), 추억의 길(1.4㎞)로 크게 4개의 테마로 나뉘어 있다.

남구 효자교회~옛 포항역 폐철도
4개 테마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2년 넘게 타오르는 ‘불의 정원’
사연 읽어주는 오픈스튜디오 등
색깔있는 시민 사랑방 자리매김

지난 26일 오전 11시께 방문한 철길숲은 평일임에도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몇몇 사람은 벤치에 앉아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단잠을 청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도심 한가운데서 여유를 즐기며 걸어다니는 시민들의 모습이 다소 어색했는데, 잘 꾸며진 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과 동화돼 편안해졌다.

철길숲의 시작점인 효자교회를 지나면 이 마을의 수호목인 팽나무가 우아한 자태로 인사를 건넨다. 숲길에는 알록달록한 옷을 갖춰 입은 단풍나무와 핑크뮬리, 억새, 국화, 장미꽃 등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나무로 가득하다. 그 풍경에 취해 10분쯤 걷다 보면 2년이 넘도록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의정원’이 보인다. 밝은 대낮인데도 치솟는 불길이 선명해서 인상적이었다. ‘인증샷’은 물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시민들도 보였다. 다시 길을 걸으면 하늘을 나는 증기기관차, 피노키오 등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다양한 조형물들이 펼쳐진다. 이어 대잠고가차도 밑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자 ‘한터마당’이라는 큰 광장이 보였다. 유치원 현장체험을 나온 아이들의 행복한 비명이 메아리쳐 행복한 기운이 광장을 가득 채우는듯했다.

인근에는 ‘포항 철길숲 오픈 스튜디오’도 보인다. 이 스튜디오는 매일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시민들로부터 받은 사연을 읽어주고, 신청곡을 틀어주고 있다. 신청방법은 카카오톡에 접속한 다음 ‘포항철길숲라디오’를 검색한 뒤 채팅창에 듣고 싶은 노래의 제목과 사연을 보내면 된다. 스튜디오에서 재생한 음악은 철길숲의 모든 구간에서 들을 수 있다. 이 시스템을 잘 이용하면 청혼이나 고백 장소로 활용하는 데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6일 오전 11시께 포항 철길숲을 찾은 시민들이 지난 2년 동안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 ‘불의 정원’의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지난 26일 오전 11시께 포항 철길숲을 찾은 시민들이 지난 2년 동안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 ‘불의 정원’의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대잠고가차도∼이동고가차도 구간의 ‘활력의 길’은 이름 그대로 조금 ‘액티브’하게 철길숲을 걸을 수 있다.

그 후 양학건널목, 학잠건널목, 작은공원과 화장실이 있는 쌈지마당을 지나서 용흥건널목이라는 조금 오래된 건물을 마주하면 철길숲 대장정이 마무리된다. 워낙 볼거리가 많아서 되돌아오는 길은 또 다른 길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철길숲은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행자 도로가 구분돼 있어 누구나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사람이 많은 저녁 피크시간은 자전거를 타는 데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정병삼(76·포항시 남구 상대동)씨는 “이 길은 걸을 때마다 흥이 나고 기분이 상쾌해 지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사람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며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든지 자연을 보고 싶을 때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고 말했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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