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

오페라는 화려하다. 호화 배역과 웅장한 무대, 장중한 음악은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티켓값도 비싸 일반인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평생에 오페라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런 까닭에 오페라 무대의 성악가는 머나먼 별나라의 외계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화려한 오페라 무대에서 내려와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클래식을 선사하는 성악가가 있다. 사연은 이렇다. 성악가는 어느 날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중학생이던 그가 대도시로 성악 레슨을 받으러 가던 첫날, 이웃에게 빌린 지폐를 손에 쥐어주던 어머니였다. 어느덧 아들은 외국 유학을 마치고 세계적인 성악가로 성장해 어머니 앞에 섰지만,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있었다. 아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그 순간 성악가는 강한 영감을 느꼈다. 평소 음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그는 어머니를 통해 음악의 치유능력을 확인하고, 어머니가 머무르고 있는 치매병동처럼 소외된 곳을 찾아다니며 클래식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전국 방방곡곡 그를 찾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그 횟수가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천800여 회에 이른다.

강원도 농촌의 한 예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성악가와 동료 10여 명이 고생 끝에 찾아갔는데 청중은 고작 20여 명에 불과했다. 많은 청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불렀고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연을 마친 후에 한 할머니가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찾아와서는 성악가에게 꼬깃꼬깃 접은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그리고는 손자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줘 너무 고맙다며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성악가는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귀한 티켓값이었다.

한센인들의 쉼터인 안동 성좌원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경복궁 타령’, ‘오 솔레 미오‘ 등을 부르자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그런데 박수소리가 왠지 이상했다. ‘딱딱딱’ 하는 묘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알고 봤더니 팔순의 할머니가 노래에 감동을 받아 손에 피가 날 정도로 힘껏 박수를 쳤는데, 한센인의 손이어서 박수소리가 일반인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성악가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한사코 손을 피하는 바람에 따듯하게 안아주었다.

성악가도 힘든 고비를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그들을 위해 떠난 여정이건만, 그들로부터 힘을 얻는 아름다운 역설인 것이다.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는 그 성악가를 일컬어 ‘극장을 떠난 바보 음악가’라 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극장을 떠나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음악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바보이기에 가능한 까닭이다. 김병종 교수도 ‘바보 예수’ 연작으로 유명하다. 그러고 보면 천재가 세상을 바꾼다는 얘기는 일면의 사실일 뿐, 세상은 잇속에 능하지 않은 우직한 바보들이 바꾸고 있다. 그 가려진 진실을 독자들과 함께 굳게 믿고 싶다. 바보 음악가는 포항 출신의 바리톤 우주호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