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가 반쯤 지나갔을 때, 페스트에 휩싸인 그 도시에 여러 날 동안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오랑 시민들이 특히 두려워하는 것인데 그 이유인즉, 이 도시가 세워진 곳이 고원 위인지라 바람은 아무런 자연적 장애도 만나지 않아 더할 나위 없이 거칠게 거리로 불어치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3부’.

알제리 북부 항구 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출몰합니다. 쥐들이 피를 토하며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도시는 페스트의 창궐로 폐쇄됩니다. 도시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 카뮈는 이들이 페스트를 겪으며 무기력해지는 참상을 그립니다. 고원 위로 불어와 도시를 관통하는 칼바람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듭니다. 페스트균이 바람을 타고 도심 한복판까지 파고들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지요. 날씨는 삶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맑고 햇볕 따스한 날은 왠지 넉넉하고 기분 좋고 습한 날씨에는 괜히 짜증 납니다.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날씨에 바람이 거칠게 몰아치면 오랑시 사람들은 죽음이 내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사회적 날씨(social weather)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물리적 날씨와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좁게는 가정으로부터 직장, 학교, 지역사회, 넓게는 국가, 민족, 인류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내가 속한 사회의 분위기가 끼치는 영향을 날씨에 빗댄 표현입니다. 폭우가 몰아쳐도 번개가 번쩍여도 비행기는 이륙을 강행합니다. 안전하게 이륙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먹구름을 뚫고 올라갈 수 있으면 그 위에 눈부신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먹구름 아래는 천둥이 요란하고 비가 쏟아진다 해도 구름 위에는 찬란한 태양, 짙푸른 하늘,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뭉게구름이 끝없이 펼쳐지기 때문이지요.

사회적 날씨에 휘둘리지 않는 주도적인 삶의 비결은 먹구름 위로 뚫고 올라갈 수 있는 내면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 내면의 힘을 엘리베이션 파워(Elevation Power)라고 합니다. Elevation에는 ‘위로 올라가다’라는 뜻 이외에도 ‘고결한’이란 뜻도 있습니다. 부단히 내면의 정원을 가꾸는 정성이 이런 고결한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날씨는 변화무쌍하게 계속될 것입니다. 날씨에 영향을 받는 반사적 삶이 아닌, 내면의 가치에 이끌려 살아가는 주도적 삶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먹구름 위 눈부신 삶은 내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는 목적지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