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봄날이 산야를 초록으로 물들이는 시기의 불청객이 산불이다. 녹음(綠陰)이 대지를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4월의 건조함은 산불이 퍼지기 좋은 조건이다. 여기에 강풍이 불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다. 2000년 4월 7일 임야 2만3천 헥타르를 태우고, 재산피해 1천억과 이재민 850명을 만들어낸 고성산불을 기억한다. 천년고찰 낙산사를 태워버린 2005년 4월 4일 양양산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지난 4월 4일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에 산불이 났다.

동해가 고향인 지인이 보내온 휴대전화 사진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무너져 내린 기왓장들이 켜켜이 쌓여있고,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벽체만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문틀과 창틀은 검게 그을려 흉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푸른 하늘 아래 꼿꼿하게 서있는 침엽수림의 몸체도 검게 타들어간 상처가 역력하다. 민가를 할퀴고 간 화마(火魔)의 상흔은 너르고 깊다.

지인은 부친의 산소가 걱정되어 고향을 찾았는데, 정작 친구의 집이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를 위로하며 낮술 먹고 있다는 전갈에 유구무언이다. 언론에서는 산불진화에 공을 세운 산림청 ‘특수진화대’와 소방관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산림청 특수진화대는 일당 10만원을 받고 불을 끄는 비정규직이다. 이참에 그들을 정규직으로, 지방직인 소방관직을 국가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위에 적시(摘示)한 날짜가 공교롭다. 4월 4일과 4월 7일. 기시감이 없으신가?! 그렇다. 4월 5일 식목일 전후한 날이다. 요즘에는 식목일이 공휴일도 아니고, 식목행사가 대대적으로 행해지지도 않는다. 주5일제 40시간 노동이 일반화되면서 2006년부터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이다. 더욱이 나무를 심기 좋은 시기는 4월 초가 아니라, 3월 중순이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해방이후 한반도 평균기온이 2∼4도 상승한 때문이다.

나무는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키우는 일도 그만큼 종요롭다. 자식농사의 핵심이 잘 키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학교 다니면서 해마다 워커힐 부근 아차산에서 송충이를 잡았다. 식목일 전후로 모든 학생이 도시락 싸들고 아차산 입구에 모이는 것이다. 배급받은 나무젓가락으로 어른 검지나 장지 크기의 송충이를 2-3가마 잡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송충이를 잡고 나면 우리는 풀독과 쐐기 통증으로 고생해야 했다. 양호실에서 발라주는 암모니아수가 치료의 전부였지만 크게 괴로운 줄도 몰랐다. 아차산 인근을 지나칠 때면 짙푸른 녹음으로 뒤덮인 산세에 내심 흐뭇하다. 저기 어딘가에 어린 시절 우리의 땀이 서려있지 아니한가, 하는 것이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외삼촌>에 등장하는 아스트로프가 나무를 만지면서 느끼는 소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일제의 가혹한 약탈과 6·25 한국동란, 그 후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흉물스러웠던 우리의 산야는 면모 일신했다. 대한민국은 핀란드, 일본, 스웨덴의 뒤를 이어 세계4위의 산림강국이다. 국토전역이 초록으로 넘쳐나는 조림(造林)의 나라가 된 것이다. 아프리카 신생국가들도 조림을 배우러 일본이나 도이칠란트가 아니라 한국을 찾는다.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 가운데 한국처럼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조림에 성공한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봄철이면 되풀이되는 산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너무 안이하다. 이번 산불을 교훈 삼아 소방헬기를 즉각 도입하고, 산불진화에 헌신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면 한다. 아울러 산불과 관련한 일부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인신공격과 정치공세는 완전 진화·소멸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화마보다 처참한 것이 무책임한 험담과 폭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