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동시에 ‘북미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행위자가 ‘동맹외교’와 ‘중재외교’라는 상이한 두 개의 외교정책 목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가? 이 두 개의 외교정책은 모순되거나 충돌할 가능성은 없는가? 동맹외교와 중재외교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러한 의문들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외교에서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면과제들이다.

지난 2월말 베트남에서 개최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우리 정부의 중재외교는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정상회담의 결렬 후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부상은 “한국은 워싱턴의 동맹으로서 중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player)”라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전면 철수했다가 3일 만에 일부 복귀한 것도 북미협상을 둘러싼 우리의 중재 역할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 동시에, 향후 북미협상의 과정에서 그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라는 압력이었다.

미국 역시 우리 정부의 대북인식과 비핵화 접근방식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강력한 제재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무시하고 한국이 북한에 기울어져서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따른 제재완화를 주장하면서 남북경협을 가속화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국제외교무대에서 보여주는 문대통령의 행태가 한미동맹의 당사국으로서 자신과 공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중재외교는 북미 양측으로부터 모두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북한의 위협에 대처할 목적으로 결성된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한국이 북미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 정부는 중재외교와 동맹외교가 지니는 의의와 한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향후 비핵화 외교전략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재외교는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나오도록 설득하고 북미협상을 촉진함으로써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가려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특히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협상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중재외교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해서 그 결과를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은 바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재외교가 동맹외교보다 결코 우선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미동맹은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국가안보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 현재의 국가안보’를 보장해주는 것이라면, ‘중재외교는 미래의 한반도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미래의 평화구축을 위한 중재외교가 현재의 국가안보를 위한 동맹외교를 위태롭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강력한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중재외교를 추진할 때 비로소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대미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공조외교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협상의 현실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균열은 오히려 우리의 중재외교 역량을 약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토대로 중재외교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미 양국의 대북협상 목표가 상충되지 않도록 긴밀한 협의를 통하여 정책조율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국제협상에서 ‘중재가 실패할 경우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동맹밖에 없다’는 사실은 냉혹한 세계외교사가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