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섭변호사
박준섭
변호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자문위원회는 지난 9일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의원정수를 360석으로 확대하는 권고안을 제시했다. 자문위원들은 의견서를 통해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사실상 적극적이지 않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사활을 건 모습이다. 소수 야 3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소극적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부패한 거대정당의 기득권 지키기라고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야 3당의 주장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도의 도입으로 비례성과 대표성이 높아진다고 당연히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일까.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은 이 제도의 장점으로 사표방지, 비례성, 대표성 강화 등을 든다. 현행 우리의 소선거구제 다수대표제도가 다수의 표를 얻은 1인이 당선되고 다른 후보자는 낙선하기에 이른바 사표가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수대표선거제도는 다수결의 원리가 선거제도상에 실현된 것이다. 다수대표제가 의회 내의 안정적인 다수세력을 형성해 정국의 안정적인 운영을 도모하고자 하는 선거제도다. 대의제 원리는 국민들로부터 대표가 명령적 위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 이익의 관점에서 일할 수 있도록 무기속 위임을 하는 제도이다. 이런 점에서 다수대표제는 비례대표제도보다 우리 헌법상의 대의제 원리와 더 조화로운 제도이다. 대의제 이념의 관점에서 보면, 유권자가 한 투표가 사표가 되더라도 선출된 대표가 표를 준 사람이나 지역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의 관점에서 대표하므로 사실 사표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또 비례대표제는 다수세력의 형성이나 다수의 지원에 의한 효과적인 정책수행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국이나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오래전부터 1선거구에서 1인을 뽑는 다수대표제를 통해 다수를 형성하고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더 민주적이고 다수대표제는 덜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투표의 비례성이 높은 제도이기는 하다. 하지만 국민이 아닌 정당의 보스나 당 관료들이 다수의 비례대표 의원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우리의 현실에서는 비민주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우리 정당의 현실은 정당별 비례대표 선정, 순위 결정 과정 등에 있어 국민의 뜻이 반영되지 않고 지도부 뜻에 좌우된다. 공천헌금, 특별당비, 밀실야합, 뒷거래 등 늘 잡음이 나오지 않았던가.

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총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당제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안정적 다수를 확보한 정당이 없을 가능성이 있고 현실적으로 독일은 연정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상적인 논리로 포장돼 있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논의의 냉정한 현실은 야 3당이 비례대표제를 통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게 해달라는 것에 있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제도의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속에서 질문할 때이다. 아직 거부권 정치가 주류를 이루는 현실에서 소수당인 야 3당에게 국정의 캐스팅 보트를 주는 것이 합의의 정치로 가는 민주주의의 진전일까.

합의 경험이 일천한 상황에서 난립한 정당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정국이 불안정할 경우에 국회해산제도가 없는 헌법하에서 어떻게 난국을 헤쳐나갈 것인가. 다당제가 된 결과, 야권을 분열시켜 오히려 정권 교체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야 3당은 국정에 동참해 운영할 실질적 수권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우리 정당들은 독일처럼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연정합의서를 만들고 이를 합리적으로 이행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대답하고 실천할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