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를 발명한 파스칼은 오래 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1623년에 이 세상에 와 1662년에 떠났다. 40년이 다 안 되는 길지 않은 생애였다.

그는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팡세’의 저자다. 그의 기하학, 계산기, 진공론이 다 유명하지만 그 무엇보다 역시 ‘팡세’다. 여기서 ‘팡세(Pens<00E9>es)’란 ‘사색집’이라는 뜻, 이 책은 그가 구상한 기독교 호교론의 체계를 보여준다.

그는 뛰어난 학자요, 이성적 정신의 소유자였지만 그 자신만만한 이성의 비참함을 누구보다 처절하게 인식한 사람이었다. 백과사전에 신을 간구한 그의 처절한 고행을 묘사한 문장들이 있었다. “그는 고통과 고문을 고안해 내려고 애썼다. 뾰쭉뾰쭉한 못 끝이 박힌 쇠띠를 차고, 말털로 짠 고행의(苦行衣)를 입고, 단식을 한 것이다.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교묘하게 꾸며진 가혹한 수단으로 자기 자신의 육체에 학대를 가했다.”

나는 이 파스칼을 생각하면 독실한 천주교 신자 시인 한 분을 떠올린다. 그는 뚝섬 부근에 살았는데 어떤 해에 지독한 수해가 났다 한다. 제주도에서 일하다 그 소식을 듣고 서울에 급히 올라왔더니 세든 집이 온통 물바다라 했다. 책꽂이 윗단만 겨우 물에 젖지 않고 있어 거기서 그중 아끼는 책 한 권만 젖지 않게 가지고 나왔노라 했다.

“그 책이 무슨 책이었어요?”

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로아네 남매에게 보내는 서한집이었죠.”

그러나 그런 책은 한국에 번역된 적이 없다. ‘파스칼 소품집’이라는 이름의 책이 몇 번 출간되었는데 그 중 하나에 ‘로아네 남매에게 보내는 서한’이 실려 있다. 오래 전 일이니 기억이 완전치 않으셨던 모양.

오늘은 주문한 헌 책이 배달되어 왔다. 이때 나는 쾌락을 느낀다. 오늘의 책은 이환이라는 분의 ‘파스칼 연구’(민음사, 1980)이다. 그에 따르면 파스칼은 “스스로 억누르기에 벅찬 이를테면 지성의 과잉에 허덕이”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지성의 소유자는 이렇게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 것도 모른다.”

오늘은 헌책을 받은 것만 좋다. 치과에서 호된 신경치료를 받았고 일산 어느 병원에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분을 뵈오러 다녀왔다. 컵라면을 먹고 칼럼을 쓴다. 목디스크가 어깨를 짓누른다.

인간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 모른다고 파스칼은 역설했다. 사소한 일들에 신경 쓰는 대신 죽음이 있음을 의식하라고 했다. ‘파스칼 연구’를 들춰보니 그 중에 한 챕터, 루시앙 골드만의 ‘숨은 신’이 있다. 이 챕터를 읽고 오늘은 그만 쉬어야겠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