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명화`김원일 지음·문지푸른책 출간교양·1만6천원

`내가 사랑한 명화`(문지푸른책)는 6·25 한국전쟁이란 일관된 소재로 `분단문학`이란 독특한 지평을 일군 소설가 김원일(76)의 미술 산문집이다.

저자가 2000년 펴낸 미술 산문집인 `그림 속 나의 인생`의 개정판으로 20여 년 만에 새로운 구성과 판형, 디자인으로 또다시 선보이게 됐다. 새로운 글을 추가하되 기존 글 몇 편은 삭제했고 새롭게 글을 다듬어 펴냈다.

“그림이란 일절 선입관 없이 그림 자체로만 감상해야 한다는 원칙론에도 불구하고, 감상자들은 그 그림에 뒤따르는 에피소드와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작품을 해석하려 한다. 소설 쓰기가 생업인 나 역시 한 장의 그림을 볼 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따라가며 화가의 당시 삶을 엿보려는 습성이 있다”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그는 한 장의 그림을 통해 화가의 부단한 생애와 그 그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비록 미술에 문외한이더라도 친근감을 느낄 수 있으며, 문학적 언어로 형상화된 총 마흔여섯 편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소설을 읽듯 다양한 인생사를 경험할 수 있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작가가 평생에 걸쳐 사랑해온 그림(또는 조각) 46점이 걸린 마음의 화랑을 순회하며, 그림이 거는 말이나 그 그림에 하고 싶은 말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추적하고 그려낸다.

이를 통해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오래 사랑받은 46점의 명화들이 작가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독자들에게 살아 있는 이미지로 새롭게 읽히니, 내성적인 소년 시절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순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작가의 그림에 대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 소설가다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미술 감상의 길잡이` 또는 `그림 읽기 안내서`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한 장의 그림을 통해 화가의 생애를 보며, 자신의 삶과 문학을 그 이미지에 접목시킨다. 이데올로기를 좇아 가족을 버리고 북으로 떠난 아버지, 홀몸으로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 지독한 가난과 두려움으로 점철되었던 성장기, 막내아우의 죽음,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좌절과 가위눌림, 자신의 창작에 영감을 주었던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가 책을 통해 펼쳐진다. 이렇듯 이 책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과 그로 인한 가족과 개인의 수난의 역사가 있고, 평생토록 그 경험을 문학으로 형상화해온 작가의 치열한 사색과 독특한 체험의 기록이 담겨 있다. 차라리 노(老)작가의 인생 고백에 가깝다 할 수 있으니, 책 곳곳에 삶의 굴곡과 무거움이 승화된 작가의 인생의 깊이가 여운처럼 남는다.

책은 전체 6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예술가의 초상`에서는 렘브란트의 `두 개의 원이 있는 자화상`을 시작으로 로댕, 뭉크, 호퍼, 자코메티, 프리다 칼로, 베이컨의 작품을 소개한다. 자기 성찰, 예술혼의 자만심과 오기, 열정 등 예술가의 초상이라 일컬을 수 있는 여러 모습을 담고 있는 글들이다.

2부 `사랑과 열정`은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를 비롯해 앙리 루소, 고흐, 클림트, 로트레크, 코코슈카 등의 작품을 소개한다. “삶이란 고해”이나 사랑 혹은 열정이 있기에 예술이 존재하고 삶은 또 반짝임을 이야기하는 글들이다.

3부 `도전과 파괴, 재창조`는 쿠르베의 `만남(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비롯해 마네, 드가, 세잔, 마티스, 뒤샹 등 전통과 관습을 뛰어넘고 상식을 파괴하여 새로운 예술 장르를 창조해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4부 `자연, 이상향`은 우리에게 친근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을 비롯해 윈즐로 호머, 고갱, 샤갈 등을 통해 인간이 돌아가고 싶은, 혹은 지향하는 자연, 고향, 이상향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5부 `시대와 현실`은 고야의 `1808년 5월 3일`과 콜비츠의 `시립구호소`, 벤 샨의 `광부의 아내` 등 험난한 삶의 파고와 역사의 격동기를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6부 `삶의 유한성`은 엘 그레코의 `베드로의 눈물`, 모네의 `임종을 맞은 카미유` 등을 소개하며, 유한한 인간의 삶과 슬픔, 그렇기에 인간이 희구하는 종교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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