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마치 세상이 개벽할 것 같은 대선이 끝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 적폐에 어느 편은 졌고, 그리고 반대로 다른 편은 뜬 것뿐. 그리고 그 다른 편이 새로운 적폐가 되어가고 있는 것 정도.

여의도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당리당락에 의한 이전투구의 장이 되고 있고, 안타까운 안전사고도 여전하고,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변함없이 OECD 국가 중에서 꼴찌이고, 내 탓이고 아닌 “네 탓이오!”를 외치는 분위기는 더 심해지고 있고, 정말 뭔가 하나 달라 진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자신들의 성향과 맞지 않은 사람들을 내몬 언론들은 세상이 나아졌다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 또 어느 신문은 2017년을 정리하는 한자로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이것을 지금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입하면 바로 신(新)블랙리스트 사건이요, 여론 조작이다. 현 정부에 대한 암묵적인 지지, 그것이 결코 객관일 수는 없다. 조작(造作)이 되었건 조성(造成)이 되었건 그것은 모두 이현령비현령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말에는 동음이의어들이 많다. 때로는 그 말들의 언어유희 작용으로 힘든 사람들을 웃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반대도 많다. 대표적 예가 2016년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병신년(丙申年)! 사람들은 병신이라는 말에 불길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 불길함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 때의 불길함을 예언했던 사람들 입에서 2018년에 대한 더 험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2018년 무술년(戊戌年) 황금 개띠 해!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래도 개판인 사회가 더 개판이 되겠구나!”라고.

필자는 2017년을 시작하는 칼럼으로 “AI도 막지 못할 새벽이여!”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리고 이육사 시인의 시 `광야`를 인용했다. 그래도 2017년을 시작 할 때는 희망의 닭 우는 소리라도 들렸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는 촛불에 아부(阿附)하는 개 짓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촛불이 우리 사회의 어둠을 몰아내고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아직도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일까.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촛불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들의 모습은 특정 종교를 믿는 신도 같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정치인들이 있다. 정치인들은 종교의 원리를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자신들을 믿는 신도를 열광케 할 이야기를 계속 생산한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지붕 푸른 집`에서 내보내는 영상들이다.

새로운 해가 밝았다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예전 같으면 해넘이와 해맞이의 현장에 직접 가진 못하더라도 TV를 보면서라도 보내는 아쉬움과 맞이하는 기쁨을 느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 필자만 그런가 했더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말했다. “벌써 1년 갔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공무원 더 늘린다고 다음 선거에서 그들이 모두 자기들을 찍어 줄 거라 착각하고 있는데, 웃기지 말라 그래라.”

귀를 솔깃하게 하는 신년사들이 남발되고 있다. 다음은 교육부 장관의 신년사다. “교육부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모든 아이를 우리 모두가 함께 키우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책임, 미래, 소통`의 세 가지 핵심을 바르게 정립하고자 합니다.” 이 신년사가 허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필자는 안다. 그 `모든 아이`에 대안학교 학생들은 빠졌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