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이스마일 카다레가 쓴 `꿈의 궁전`은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국민들의 꿈을 수집하고 선별해 술탄에게 보고하는 국가기관 `타비르 사라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권력 암투를 다루고 있다. 물론 `타비르 사라일`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허구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의 가장 은밀한 영역인 수면과 꿈을 관장하는 일은 전화 도청과 SNS 감시, 메신저 사찰 등 국정원이 우리 국민을 상대로 벌인 짓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세기 터키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지만 21세기 대한민국 현실과 대응하면서 지난해에 특히 더 실감나게 읽었다.

우리의 의식이 활동하는 낮 동안 무의식은 통제되고 억압된다. 그러나 의식이 작동하지 않는 수면 활동 중에는 무의식이 온갖 `상징`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꿈이다. 꿈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들을 수반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아쉬움, 동경, 채워지지 않는 소망들에 대한 반응으로써 간절한 소원을 환각적 체험을 통해 성취된 것으로 표현하는 심리적 행위”이다.

그런데 사람의 무의식이 꼭 꿈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꿈이 무의식이 머무는 비밀의 방이라면, 강박증과 말실수는 무의식이 표출되는 외부 통로다. 강박증은 지속적이지만 말실수는 순간적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말실수의 경험이 있다.

프로이트는 말실수에 대해 연구하면서 “감추고 싶은 속마음을 무의식중에 밖으로 드러내는 행위이자 억압된 무의식이 의식에 개입하는 현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몹시 허기진 중에 “배부르다”고 하거나 추운데 “덥다”고 하는 등 말이 반대로 나오는 경우가 그러하다. 배부른 상태와 따뜻한 온기를 향한 욕망이 의식적 행위인 `말`에 불쑥 개입해 혼란을 일으킨 결과다. 애인과 데이트 도중 나도 모르게 전 애인의 이름을 부르거나 다급한 순간에 “엄마야” 외치는 것도 비슷하다.

한 스님이 간신히 교통사고를 면하고는 “아이고 하나님!” 했다는 이야기나 어느 교회 방송실에서 “예수는 중”이라고 자막 실수를 낸 일화도 풍문으로 돈다. 말실수는 이토록 사소하고 일상적이다.

좀 더 오묘하며 흥미로운 사례들은 따로 있다. 정치인들의 말실수다. 정치 메커니즘이나 복잡한 정략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므로, 그냥 있었던 일들을 나열만 해본다.

지난 4월, 당시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광주 유세 중 “문재인이 돼야 광주의 가치와 호남의 몫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11월,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지난 15년간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누었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라고 말했다.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은 새누리당 대표 시절인 지난해 4월, 이준석 후보 지지 연설 중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안철수 의원을 선택해주시기를…”이라고 말하고는 당황하며 발언을 고쳤다.

이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정치인들의 여러 사례를 그야말로 `압도`하는 강력한 말실수가 나왔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중앙지법 공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 사실을 진술하면서 “회장님이 살아계실 때부터”라고 말했다가 황급히 “회장님이 건재하실 때부터”라고 정정한 것이다.

세간에서 이건희 회장의 건강 이상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중에 벌어진 해프닝이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말실수에 대한 프로이트의 주장이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지적도 많다. 정말 단순하게 잠시 단어를 혼동하거나 생각이 뒤엉켜서 또는 감정의 격랑에 의해 내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말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프로이트의 주장이 신뢰할 만한 것이라면, “저는 재산 전체를 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라든가 “직원들의 유급휴가를 확대하겠습니다” 같은 말실수들이 여기저기서 회자되길 바란다.